밴드 해체후 3년…솔로 음반 ‘공중부양’
정체성은 무엇일까 질문 던진 시간
하늘 본 만큼 음악에 여백 많이 생겨
다음달 17일부터 단독 콘서트도
“가장 나다운 걸 나답게 하자…
마흔 된 장기하라는 음악인의 좌표”
오로지 장기하로 다시 섰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해체 이후 3년 만이다. 밴드의 활동을 끝내며, 그는 잠시 음악을 멈췄다. 장기하는 그 시간 동안 끊임없이 물었다고 했다.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길었어요. 뭔가를 창작하기보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돌아봤어요. 장기하라는 싱어송라이터에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무엇일까 질문을 던진 시간이었어요.”
장기하는 독특한 정체성의 가수다. 표현방식엔 독창성과 실험정신이, 메시지엔 시대정신과 사회풍자가 담겼다. 2008년 ‘싸구려 커피’로 데뷔해 ‘달이 차오른다, 가자’, ‘별일 없이 산다’, ‘우리 지금 만나’ 등 꾸준히 히트곡을 냈다. 그 시대 청년들의 이야기가 장기하를 통해, 나이를 먹어가는 그를 통해 전해졌다. 자취방에 틀어박혀 만화책을 보며 낄낄거리고, 방금 끓인 라면 하나에 목숨 걸고, 사랑이나 취업에 미끄러져 루저를 자처하는 청년의 초상 같았다.
‘한국어의 말맛’도 그의 음악적 강점이었다. 장기하는 ‘언어의 마술사’였다. 자음 ‘ㅋ’를 제목으로 삼아 쿨쿨, 쿵쿵, 콕콕, 크크와 같은 의성어·의태어로 노래가 완성됐고, 마침표가 찍히지 않는 긴 문장을 박자수가 짧은 한 마디에 담아 냈다. 그러자 랩 같기도, 타령 같기도, 판소리 같기도 한 음악들이 나왔다. 밴드가 아닌 솔로로 돌아온 장기하는 여전했고, 조금 달라졌다.
최근 온라인으로 만난 장기하는 “솔로 음반 ‘공중부양’은 지난 3년의 결과물이면서 솔로 장기하의 출발점이자 자기소개서”라고 말했다. ‘공중부양’은 장기하가 음반의 작사, 작곡은 물론 프로듀싱, 믹싱까지 도맡았다. 이 앨범이 나오기까지 그는 대체로 비슷한 날을 반복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밥을 먹고 파주의 집에서 차를 몰고 나와 임진강으로 달렸다. 가끔씩 강원도 철원군까지 가기도 했다. 그러다 멍해지는 순간마다 한 문장에 기대 곡이 완성됐다.
“하늘이 많이 보이는 곳에 살아서 그런지 음악에도 여백이 많이 생긴 것 같아요. 밴드 때와 달라지겠다는 다짐을 한 건 아니지만, 작업 과정에서 ‘이런 건 장기하와 얼굴 때 했으니까 지금 내가 하기엔 재미없지’ 생각하며 조금씩 다르게 선택했어요.”
“밴드 시절과는 다른 음악”을 만들려는 생각의 끝에서 다섯 곡이 태어났다. 이 앨범을 통해 장기하가 찾은 정답은 ‘목소리’였다. “장기하라는 뮤지션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목소리라고 생각했어요. 목소리만으로 녹음하고 최소한의 소리를 가져다 붙이는 식으로 만들었어요.”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전자음이 다소 섞였다. 의도치 않게 베이스는 빠졌다.
“베이스가 없다는 건 만들고 알게 됐어요. ‘붕 뜬 거 같은데 뭐지?’ 싶어서 가만히 생각했더니 베이스가 없더라고요.” 딛고 설 땅을 잃은 채 둥둥 뜬 음악이 되자, 앨범의 제목은 ‘공중부양’이 됐다. “덩그러니 있는 목소리가 외롭지 않을 만큼만 소리를 붙여나가다 보니 ‘이만하면 됐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베이스를 넣고 안 넣고 의식조차 없는 과정이었어요. 저도 만들어놓고 신기했어요.”
앨범엔 타이틀곡 ‘부럽지가 않어’부터 ‘뭘 잘못한 걸까요’, ‘얼마나 가겠어’, ‘다’, 소리꾼 이자람과 함께 한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까지. 여전히 독창적이다. ‘부럽지가 않어’엔 지금의 우리와 장기하의 고민이 부담스럽지 않게 엮였다. ‘부럽지가 않다’는데 부러운 듯한 감정이 담겼고, 그러면서도 무심히 툭툭 내뱉는 태도가 초연해 부러워하지 않는 것도 같다. 뮤직비디오에선 부러워하지 않으려 하지만 자꾸만 부러워하게 되는 상황을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장면으로 그렸다.
그는 “지금 시대에서 부러움은 중요한 감정”이라며 “부러움의 대상이 될 만한 누군가의 일상을 너무 자세히 알 수 있는 데다 이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힘들어진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이 곡이 태어난 이유다.
음악적 실험과 언어의 표현, 이에 더해 삶을 대하는 장기하의 태도는 그를 향한 지지의 원천이다. 무겁게 짓누르는 일상을 ‘별 것’ 아니라는 듯 마주보고, 난 아무렇지 않다며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부럽지가 않어’ 중) 하라는 말은 괜히 든든하다.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하냐”는 말은 끊임없이 다그치는 이들에게 위안이 된다. 막다른 길에서도 버틸 체력을 주고, 두 발을 디딜 땅이 없어도 위태롭지 않게 한다.
마흔이 된 장기하가 적어가는 새로운 자기소개서엔 지난 시절의 장기하와 지금, 그리고 내일의 장기하가 쌓였다. 그는 “이번 앨범으로 ‘이게 장기하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번 음반은 밴드와는 다른, 만으로 마흔이 된 장기하라는 음악인의 좌표예요. 언젠가부터 가장 나다운 것 외에는 신경 쓰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먼 길을 돌아 지금까지도 가장 나다운 걸 나답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음달 17일부턴 단독 콘서트도 연다. 약 3년 만의 공연이다. 이 무대에서도 밴드가 아닌 솔로 장기하의 음악을 들려준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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