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달리 당사자 녹음은 합법

檢, 녹취록 기반 보도에 우려표시

재판부도 “일리가 있다”며 동의

대장동 특혜 의혹 사건에서 정영학 회계사의 통화 녹취록이 중요 증거로 떠올랐다. 여·야 유력 대선 후보 배우자들도 통화 녹취록을 근거로 한 폭로전의 당사자가 되는 등 스마트폰 보급으로 대화 내용이 각종 법적 분쟁의 불씨를 당기는 상황이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 이준철)는 지난 2일 열린 대장동 사건 공판기일에서 최근 논란이 된 정영학 회계사의 녹취록이 유출되지 않도록 검찰과 피고인 측에 주의를 당부했다. 검찰은 정 회계사의 녹취록 내용을 기반으로 한 언론 보도와 정치권의 공방에 우려를 표했고, 재판부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며 동의했다.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씨는 사적 심부름을 했다고 주장하는 별정직 공무원의 통화 녹음이 공개되며 ‘의전 논란’과 ‘법인카드 유용’ 논란이 더욱 거세졌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도 인터넷 매체 기자와 7시간가량 통화한 내용이 공개되면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범죄를 폭로한 피해자를 비하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통화 녹음 자체가 불법인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제3자가 녹음한 게 아닌 통화 당사자가 녹음을 했다면 처벌할 수 없다. 상대방에게 녹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직접 통화를 한 당사자가 대화를 기록으로 남긴 것은 법이 금지하는 ‘타인 간의 대화 녹음’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않고선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불법 녹음을 한 당사자 처벌 여부를 떠나 녹취록을 증거로 쓸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법원 판단이 엇갈린다.

대법원은 최근 제3자가 통화 당사자 한쪽에만 동의를 얻고 녹음한 대화 내용은 증거물로 쓸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지난달 점유이탈물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남자 화장실에서 습득한 휴대전화를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의 항소심은 1심이 증거로 판단한 통화 녹음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A씨와 통화한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통화 내용을 녹음한 것은 ‘불법 감청’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반면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018년 B씨 등 3명이 C씨를 상대로 낸 약정금 소송 상고심에서 C씨가 “여유가 없어 나머지 돈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한 통화 내용을 근거로 C씨의 채무가 남아 있음을 인정했다. 통화 당사자 간 녹음의 증거능력은 인정한 셈이다.

통화 녹음의 위법성에 대한 판단은 주로 민사재판에서 많이 이뤄진다. 녹음으로 인한 ‘음성권 침해’ 인정 여부에 따라 손해배상 여부도 갈린다. 음성권이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자기 의사에 반해 함부로 녹음되거나 재생되지 않을 권리를 뜻한다. 법원은 이를 헌법이 보장하는 인격권에 포함되는 권리로 본다.

유부녀 D씨와 불륜을 저지른 유부남 E씨는 2019년 “통화를 녹음하고 있느냐”는 D씨에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통화 내용을 녹음했고, 이를 아내에게 전달했다. D씨는 E씨의 통화 녹음 등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고, 법원은 음성권 침해를 인정했다. 반면, 다른 재판에서 증거로 쓸 목적으로 상대방과의 통화를 3차례 녹음한 F씨의 경우는, 통화 녹음 내용이 내밀한 사적 영역이 아니란 이유로 음성권 침해가 인정되지 않았다.

한편 비단 음성 통화 내역이 아니더라도,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같은 소셜미디어 메신저도 재판에서 빈번하게 증거로 활용되고 있다.

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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