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남경 별궁, 조선 경복궁 후원

북악, 1500년전 부터 존귀했던 영산

마애미륵보살입상, 겸제의 부아암도

공비 침투, UFO 출현설 스토리 만개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청와대 경내는 경복궁의 후원이었다. 고려시대인 1068년 문종 때 남경 별궁이 정식으로 창건되고, 1104년 숙종때 증축했지만, 현재 흔적은 없다. 조선시대 에는 경복궁 후원인 상림원으로 서현정, 취로정, 관저전, 충순당 등 건물이 있었으나 임진왜란때 모두 소실됐다.

조선 고종 경복궁 중건 때 창덕궁 후원을 본떠 경복궁 후원을 조성했는데 과거시험을 보던 융문당-융무당은 현재 상춘재-녹지원으로 개칭됐다. 춘안당은 융문당 서쪽에 있는 부속건물로 세자가 군왕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 일시 기거하던 재숙(齋宿)공간이었다.

지금의 영빈관 인근엔 1893년 풍년 기원을 위해 지은 경농재(관풍루,대유헌 포함)가 있었고, 실제 논밭 ‘팔도 배미’도 있었다. 조선8도로 구획지은 점이 이채롭다. 청와대 구 본관터엔 군사들을 위한 수궁이 있었는데, 현재 항아리모양의 장식기와가 남아있다. 현 관저엔 오운정, 침류각, 보물 석조여래좌상 등이 있다.

청와대 뒷편 북악산은 1396년 백악산이라는 이름으로 한양도읍의 주산이 된다. 도성과 성문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한 구역이다. 국가 명승이지만 개방구역-통제구역이 섞여 등산로 끊김이 잦았는데, 앞으로는 일사천리로 감상하게 된다.

북악산 부아암
북악산 부아암
겸제 정선이 그린 백악산(북악산). 원안은 부아암
겸제 정선이 그린 백악산(북악산). 원안은 부아암
일제가 박은 쇠말뚝을 빼버린 촛대바위
일제가 박은 쇠말뚝을 빼버린 촛대바위

이곳에는, 임금의 만수무강 기원 각석이 있는 동쪽 계곡 만세동방, 옛 군견 훈련장, 북악산 정상인 백악마루, 촛대바위, 무장공비 침투 흔적 1.21 사태 소나무, 청운대, 법흥사터 등 역사 유적들이 적지 않다. 문화재청과 종로구, SK텔레콤, 모프인터렉티브는 이 일대 10개소에서 증강현실(AR)로 재미있게 안내해설 등을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군견훈련장 AR
군견훈련장 AR
AR서비스 제공포인트
AR서비스 제공포인트

청와대 동쪽 문을 나가 북악산에 들어서면 헬기장이 바로 나오고, 북쪽 등산로를 따라 만세동방, 법흥사터를 거쳐 청운대쉼터에서 한양도성을 만난다. 한양도성 총 둘레는 18㎞이고, 창의문~숙정문 거리는 2.2㎞, 청와대 경내와 닿은 구역은 1.2㎞이다.

청운대 쉼터를 기준으로 성곽 동쪽으로 가면 도성 옆길 등산로, 촛대바위 쉼터, 숙정문을 만난다. 서쪽으로는 청운대와 옛 군견훈련소, 1.21사태 소나무, 백악마루에 이른다.

창의문
창의문

백악마루에서 1㎞ 서쪽에 있는 창의문(彰義門:자하문, 북문)은 청운동에서 쉽게 접근하던 곳이다. 삼청동 행정구역인 숙정문(肅靖門)은 2006년에야 개방됐는데, 도성 4대문 중 정북에 위치하던 북쪽 관문이다. 15세기 이후 폐쇄, 개방을 번복했는데, 수백년전 폐쇄조치때 소나무를 많이 심었다. 1968년 1.21사태때 김신조 무장공비들이 이 소나무숲으로 침투했다고 한다.

청와대 인근 한양도성길
청와대 인근 한양도성길

1976년 UFO 출현설이 돌기도 했던 북악산 정상 백악마루 일대에는 신비의 바위, 기암괴석이 많다. 선사시대 소망을 기원하며 작은 돌로 바위 표면을 갈아낸 성혈(性穴)과 삼청동 방향 8부능선에 두 개의 바위가 마치 아이 업은 모습처럼 보인다하여 이름 붙여진 부아암(負兒岩) 등이다. 부아암은 이 산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말바위는 청와대 뒤 북악산 동쪽 끝에 있어 끝말(末)자를 쓴다. 형상이 말과 비슷하다 해서 마암(馬岩)라고도 칭한다. 백악마루 아래 성북동, 동대문, 세종로, 경복궁 천촌만락이 펼쳐져 있다.

숙정문
숙정문

경복궁의 정북쪽에 있는 촛대바위는 숙정문 북서쪽 약 400m 지점에 있다. 정남쪽에 경복궁이 자리 한다. 일제가 바위 상단부에 쇠말뚝을 박았지만 광복 후 제거했고, 우리 민족의 발전을 기원하는 촛대를 세우며 ‘촛대바위’라 정했다. 옛 임금들이 촛대바위 쉼터를 거점 삼아 백악산 호랑이를 사냥했다는 기록이 있다.

청와대 뒷편, 이름 모를 암자터의 마애미륵보살입상
청와대 뒷편, 이름 모를 암자터의 마애미륵보살입상

백악산 동편 기슭에 있는 법흥사터는 신라 진평왕 때 건립한 것으로 기록됐으나 지금은 축대, 주춧돌 만 남아있다. 서쪽 창의문에서 약 200m 떨어진 계곡엔 바위굴, 마애미륵보살입상이 남은, 이름 모를 암자터도 있어 궁금증을 낳는다. 최소한 1500년전부터 귀한 대접을 받은 영산(靈山)이었던 것 같다.


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