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사자는 얼룩말을, 매는 쥐를 낚아채 먹이로 삼는다. 플랑크톤은 작은 물고기의 먹이가 되고 작은 물고기는 큰 물고기의 먹이가 되는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은 생태계의 법칙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런 약육강식의 기원은 단세포생물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더 큰 단세포생물은 작은 단세포생물을 덮쳐 먹이를 취했다. 그러나 이 약육강식에 반전이 있다.
어떤 우연으로 세포 안으로 들어간 단세포 생물이 소화되지 않고 그 세포 안에서 살아남았다. 공생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우연히 살아남게 된 단세포 생물에 미토콘드리아의 조상 세균이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안에서 소화되지 않고 에너지를 만들어냄으로써 단세포 생물은 더 많은 에너지를 얻고 미토콘드리아는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단세포 생물의 세포는 다른 DNA를 가진 생물과 공생하면서 자신의 DNA를 보존할 필요가 생겼고 세포핵을 만들어 자신의 DNA를 저장하게 된다. 이렇게 진핵생물이 탄생하면서 생물은 빠르게 진화한다. 경쟁보다 공생이 진화의 핵심인 셈이다.
‘전략가, 잡초’‘싸우는 식물’ 등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일본의 대표적인 식물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패자의 생명사’(더숲)에서 최초의 생명부터 인류의 탄생까지 경쟁보다는 공생을 택함으로써 종의 번식에 성공한 ‘진정한 승자’의 역사를 들려준다.
세포핵이 없는 원핵생물인 박테리아는 진핵생물이 진화해 다양한 동식물이 된 것과 달리 단세포생물인 채로 27억년을 살며 있다. 이들은 단순한 DNA를 선택했다. 유전자를 빠르게 복사하고 변이를 통해 환경변화에 적응해나간 것이다.
약한 자들의 또 다른 전략의 하나는 무리짓기이다. 미토콘드리아를 받아들인 세포는 복잡해지면서 진화하지만 세포를 확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분열된 세포가 모여 더 큰 덩어리를 만드는 쪽을 택한다. 세포가 모인 덩어리인 하나의 집합체, 즉 다세포 생물이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뭉친 세포들은 서로 역할 분담을 통해 물질과 신호를 주고 받으며 효율적인 생명활동을 하게 된다. 사람은 70개조의 세포로 이뤄져 있다.
약한 자들의 전략은 심지어 희생적인데, 바다에서 처음으로 대지로 진출한 최초의 식물들은 고사, 분해돼 풍화한 암석과 섞여 다음 세대가 자랄 수 있는 흙을 탄생시켰다. 연약한 식물은 조상이 죽으며 만들어 놓은 흙을 기반으로 삶의 터전을 넓혀갔다.
이길 수 없는 최대 강자 앞에선 회피전략도 주효했다. 공룡 시대 매우 약한 존재였던 포유류는 공룡의 눈을 피해 밤을 택했다. 이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이들은 놀라운 진화를 이뤄냈다. 어둠 속에서 먹이를 찾아내기 위해 청각과 후각을 발달시켰고, 좁은 장소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민첩성, 알을 지키기 위해 배 속에서 새끼를 키우는 무기를 습득, 진화의 큰 보폭을 내딛게 된다.
책은 생명의 역사가 바로 패자들, 약한 자들이 위기를 극복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특히 식물학자로서 전공분야인 식물의 기묘한 이야기를 SF 드라마처럼 그려내 읽는 맛을 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패자의 생명사/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박유미 옮김/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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