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방어권 행사…증거 인멸 단정 어렵다”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마약류 투약 혐의로 24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받은 배우 유아인(37·본명 엄홍식) 씨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구속 위기에서 벗어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이민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1시 유 씨의 영장심사를 한 후 오후 11시30분께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도 어렵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장판사는 관련 증거가 이미 상당수 확보됐고 유 씨가 기본적 사실관계 자체를 상당 부분 인정하며 대마 흡연은 반성하는 점 등을 감안했다고 했다.
코카인 투약 혐의는 다툼의 여지를 배제할 수 없어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고, 주거가 일정하며 동종 범행 전력이 없는 점도 판단 근거로 뒀다.
이 부장판사는 함께 청구된 지인 최모(32) 씨의 구속영장도 같은 사유로 기각했다.
유 씨는 서울 마포경찰서 유치장에서 영장심사 결과를 전달받고 귀가했다. 유 씨는 귀가 전 취재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유 씨는 유치장을 나오면서 '경찰의 무리한 구속 시도였다고 보는가'라는 취재진의 물음에 "그건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며 "법원이 내린 판단을 존중한다"고 했다.
'코카인 혐의를 인정하는가'라는 물음에는 "제가 언론을 통해 해당 사실을 말하기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며 "앞으로 남은 절차 성실히 임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소명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증거를 인멸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는 말에는 "그런 사실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유 씨는 구속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유치장에서 대기한 바 있다.
앞서 유 씨는 이날 오전 10시29분께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유 씨의 '흰 머리'였다.
유 씨는 검은 정장 차림으로 등장했다. 얼굴에 화장기는 없는 듯했다. 유 씨의 표정은 비교적 덤덤했다. 다만, 최근 심경을 대변하듯 늘어난 흰머리가 눈길을 끌었다.
당시 유 씨는 '혐의를 인정하는가', '공범을 도피시키려고 한 게 사실인가' 등 취재진 질문에 "혐의를 상당 부분 인정하고 있다. 공범을 도피시키려는 그런 일은 전혀 시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영장심사를 마치고 나와선 "증거인멸과 관련해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말씀드렸다"며 "내가 밝힐 수 있는 모든 진실을 그대로 밝혔다"고 했다.
'마약한 것을 후회하느냐'는 물음에는 "후회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는 지난 19일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유 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유 씨는 대마, 프로포폴, 코카인, 케타민, 졸피뎀 등 5종의 마약류를 투약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유 씨가 2021년 프로포폴을 과다 처방받았다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조사 결과를 넘겨받아 수사를 시작했다. 소변, 모발 감정과 의료기록 추적 과정에서 투약이 의심되는 마약류의 종류와 횟수가 늘었다.
경찰은 유 씨와 함께 마약류를 투약한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 일부가 해외에 체류 중인 점 등을 미뤄 증거인멸 우려도 있는 만큼 구속수사가 필요하다고 봤다.
유 씨는 지난 3월27일과 이달 16일 2차례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출석해 장기간 조사를 받았다.
유 씨는 경찰조사에서 일부 대마 흡입을 제외한 나머지 혐의는 부인했다. 프로포폴, 케타민, 졸피뎀 등은 치료 목적이고 코카인은 투약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 씨가 이날 영장심사 전후로 취재진 질문에 "혐의를 상당 부분 인정하고 있다", "(마약 투약을)후회하고 있다"는 등의 발언을 해 변론 전략을 바꾼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경찰은 기각 사유를 검토해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할지 검토할 방침이다.
경찰은 유 씨의 마약류 투약을 돕거나 직접 투약한 혐의를 받는 최 씨 등 유 씨의 주변 인물 4명도 계속 수사해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한편 유 씨는 지난 11일 두 번째 경찰 출석을 위해 서울경찰청 마포청사 인근에 도착했으나 "취재진이 많아 출석하지 못하겠다"는 취지의 의견을 경찰에 전달하고 돌아갔다.
유 씨의 법률 대리를 맡고 있는 법률사무소 인피니티는 당시 "이미 출석 일정이 공개된 상황에서도 유아인은 조사에 임하려고 했고, 변호인은 이미 일정이 공개된 상황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비공개 소환의 원칙에 맞도록 다른 경로로의 출입 등 가능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경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