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외교도발, 전문가 진단
韓대사 초치에 中대사 초치 맞불
초치 수위 한단계 낮은 차관보급
양국 모두 지켜야 할 ‘선’은 지켜
지난해 수교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30년을 향한 이정표를 제시하며 ‘훈풍’ 조짐이 잠시 보였던 한중 관계가 중대 기로에 섰다. 올해 들어 두 달 새 양국 대사를 서로 불러 항의하는 일만 두 차례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1년간 외교정책 기조 변화를 지켜보던 중국이 임계치를 표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싱하이밍(邢海明) 대사의 외교사에 남을 결례 발언을 한 것과 별개로 한중 관계가 재정립되는 과정이라는 해석도 있다.
지난 11일 중국 외교부는 눙룽(農融) 외교부 부장조리가 10일 정재호 주중한국대사를 초치했다고 밝혔다. 싱 대사가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대사관저로 초청한 자리에서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고 공개발언을 했고, 이에 대해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이 지난 9일 싱 대사를 초치해 높은 수위로 경고한 데 대한 맞불 조치다.
‘회동을 약속하고 만났다’는 ‘웨젠’(約見)은 ‘불러서 만났다’는 ‘자오젠’(召見)보다 수위가 낮지만 한국 외교 용어로 ‘초치’(招致)에 해당한다. 다만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는 차관보급이다. 눙 부장조리는 싱 대사가 이 대표 등 정치권 인사들과 접촉하는 것은 대사 본연의 업무라며 싱 대사를 감쌌다. 그러면서 “한국이 현재 중한(한중) 관계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 되돌아보고 진지하게 대하길 바란다”고 책임을 돌렸다.
최근 한미일 밀착 외교 국면에서 중국은 물밑에서 한국에 불만을 표출해 왔다. 지난달 한국을 찾은 류진쑹( 松) 중국 외교부 아주사장(국장)은 최용준 동북아국장과 만나 대만 문제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태도에 유감을 표시했다. 류 사장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이후 한국 정부의 분위기를 살폈던 것으로 알려졌다. 류 사장은 당시 카운터파트인 최 국장 외에 여러 고위급 인사와 접촉하려 했으나 불발됐다고 한다. ‘외교 관례’에 맞게 급에 맞는 교류만 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의지를 읽은 것으로 풀이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한중 관계를 새롭게 조정하는 과정”이라며 “이전에는 한중 관계의 비대칭성이 분명했고 국제사회의 기본적인 규범과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들이 많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상호 존중’과 ‘호혜의 원칙’을 내세우니 반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중 외교당국이 서로 상대국 대사를 초치한 것은 두 달 전에도 있었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이 국빈방미를 앞두고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만해협의) 긴장은 힘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말한 것이 계기였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반발한 것에 양국 대사에 각각 항의가 있었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중국은 ‘나름대로’ 성의를 보여왔으나 한미일 밀착 외교 속 윤 대통령의 대만이나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한 발언이 이어지면서 임계치에 이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윤 대통령이 당선된 후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축하 전화가 있었고, 윤 대통령 취임식에 역대 최고위급인 왕치산(王岐山) 당시 국가 부주석을 파견했다.
황재호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는 “중국 측은 나름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하는데 한국 측은 미일로만 달려가고 중국에 대한 배려가 딱히 없는 것에 한계점이 오지 않았냐고 판단한 것 같다”며 “지난 1년간 불안했던 한중 관계가 임계점에 도달해 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모두 ‘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 당시 중국의 보복 조치로 양국 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는 “돌파구가 한국밖에 없는 상황에서 굉장히 불안감과 조바심, 초조함, 조급함을 느끼는 중국이 현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과분하게 대응하는 것”이라며 “대사는 양국 관계를 발전하도록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중국 측이 올해 초부터 한국과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요청해 왔으나 한국이 이에 화답하지 않았던 상황이라고 한다. 정부로서는 상반기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3각 공조에 집중하고 하반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나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국과의 대화에 나설 계획인데,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양국이 ‘레드라인’을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중 관계 관리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만큼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먼저 내달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되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외교장관 회의를 계기로 한중 외교장관 간 만남이 가능하다. 중국의 의도와 별개로 싱 대사의 발언은 외교 규범에 어긋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외교 기피 인물) 지정은 과도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다. 최은지 기자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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