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美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 첫 내한 공연
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안녕하세요. 랜들입니다.”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신성 랜들 구스비(27)는 첫 한국 방문을 앞두고 열심히 연습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재일교포 3세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를 둔 랜들 구스비는 3년 전이었던 2020년 데카 클래식과 전속계약을 맺으며 주목받은 연주자다. 그는 한국에서의 첫 공연(22일, 롯데콘서트홀)을 앞두고 19일 서울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하프 코리안이라 첫 방한이 감개무량하다”며 “나를 존재하게 해준 나라라는 점에서 더욱 각별하다”고 말했다.
■ 음악적 정체성은 아프로-아메리칸이라는 ‘뿌리’
랜들 구스비의 ‘음악적 정체성’은 그의 뿌리에서 나온다. 스스로 ‘하프 코리안’이자, 아프로-아메리칸(미국에 살고 있는 흑인)이라고 말하는 구스비는 지난 2021년 데카에서 발매한 데뷔 앨범 ‘루츠(Roots)’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연주했다. 그동안 클래식 음악계가 주목한 적 없는 아프리카계 미국 음악을 담아낸 중요한 ‘첫 걸음’이었다.
그는 “처음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부터 열네 살이 될 때까지 아프로-아메리칸 작곡가의 곡을 경험하지 못했다”며 “이 앨범을 만드는 동안 나와 같은 뿌리의 작품을 발굴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구스비가 이 앨범을 한창 작업 중이던 2020년엔 전 세계적으로 흑인 인권운동인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BLM·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가 확산됐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흑인 조지 플루이드 사건이 계기가 돼 다시 한 번 시작된 캠페인이었다.
구스비는 “당시 인종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각성이 불붙기 시작했고, 클래식 음악 안에서도 아프로-아메리칸이 소외돼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며 “원래 존재했지만 알려지지 않았던 아프로-아메리칸, 나아가 유색인종의 음악을 발굴하고 그것이 클래식 음악계와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지 조명한 앨범이었다”고 말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제게 이곳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큰 문제는 극명한 인종간의 차이, 그러니까 백인과 아프로-아메리칸 사이의 인종 차이였어요. ‘루츠’ 앨범을 내기 전까지 (미국은) 100% 백인들만을 위한 클래식 음악계로 자리하고 있었죠. 이 안에서 아프로-아메리칸으로의 뿌리를 찾는 것이 저의 사명이었어요.”
백인 중심의 클래식 음악계에서 아프리카계 음악 유산을 조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전히 도전적인 일이다. 그는 “이 작곡가들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라며 “팬데믹을 거치며 휴머니티의 관점에서 감염병으로 고통받은 약자와 소외된 사람의 경험을 주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의 프로그램도 그의 음악적 방향성이 녹아들었다. 공연에선 블랑제와 라벨, 윌리엄 그랜트 스틸과 베토벤으로 마무리한다. 구스비는 “프로그램을 정할 때 각각의 음악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 연결고리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 2악장은 블루스로, 미국 음악에 영향을 많이 받아 태어났다”고 말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는 베토벤이 당초 아프리카계 영국인 친구인 조지 브리지타워에게 헌정한 곡이었다. ‘음악적 영감’을 주고 받던 두 사람은 치정 문제로 얽히며 사이가 멀어졌고, 이 곡은 루돌프 크로이처에게 돌아갔다. 곡이 ‘크로이처 소나타’라는 별칭을 갖게 된 이유다. 구스비는 “브리지타워는 이 곡을 단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지만, 이번 공연에서만큼은 ‘브리지워터 소나타’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 어머니는 음악적 영감의 원천
구스비가 바이올린을 시작한 것은 어머니의 권유였지만, 그는 “바이올린을 선택한 것은 나의 의지였다”고 말한다. 그의 어머니의 교육 방식은 한국식이었다. 구스비는 “바이올린 레슨을 시작한 8세~16세 사이엔 워낙 선생님들이 연습을 하라고 강요하다 보니 도리어 연습하기 싫어졌다”며 “그 때 어머니가 타이머를 맞춰두고 한 시간씩 하루에 세 번 연습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 시절을 보내다 2011년 이차크 펄먼의 여름 음악학교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바이올린을 평생 연주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차크 펄만의 애제자이기도 하다.
구스비에게 어머니는 “영감의 원천”이자, 원동력이다. 그는 “어머니의 헌신과 노력이 없었다면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와 가족이 나를 위해 헌신한 시간과 돈, 많은 희생을 언제나 생각하고 있어요. 늘 가치있게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요. 하지만 그 마음이 압박으로 다가오진 않아요. 그것들이 어떤 하나의 가치가 돼 나의 음악을 만들고 있어요.”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구스비는 올 1월부터 삼성문화재단의 후원으로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엑스-스트라우스’를 사용하고 있다. 국내에선 클라라 주미 강이 사용한 악기로도 잘 알려져있다. 지금은 한창 악기의 소리를 매만지는 중이다. 그는 “엑스-스트라우스는 밝은 소리를 가지면서도 이중적이다. 풍성하고, 초콜릿에 가까운 다크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구스비는 이 악기의 별칭을 ‘타이거’로 지었다. 세계적인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에서 따왔다. “한국에 오면서도 골프채를 챙겨온” 골프 애호가답게 악기에게도 그의 이름을 붙여줬다. 심지어 “이번 내한 일정 중 골프를 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꼭 치고 싶다. 스크린 골프라도 갈 생각이다”라며 “골프와 바이올린 모두 집중력을 높이고, 정신력을 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말했다.
“필드에 있을 때나 무대에 있을 때나 비슷한 환경을 마주하게 돼요. 그날의 날씨, 관객의 태도, 그날의 정서와 기분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골프와 바이올린이 유사한 경험을 주죠. 골프를 잘 치기 위해선 현실에서의 문제에서 벗어나 지금 이순간에만 집중하는 훈련을 하게 돼요. 바이올린을 들고 있지 않으면서도 바이올린 연습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2018 영 콘서트 아티스트 국제 오디션에서 우승한 구스비는 2019년 영 클래시컬 아티스트 재단과 런던 뮤직 마스터가 협업한 대회에서 첫 ‘로비 아티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달엔 야니크 네제 세갱이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플로렌스 프라이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담은 음반을 발매했다. 음악계에선 구스비에 대해 “앞으로 점점 더 만나기 힘든 아티스트”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만큼 찾는 곳이 많아지고, 유명세를 얻고 있다는 의미다.
“음악가로 오래도록 연주 활동을 하고 싶고,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평을 넓히고 싶어요.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물론 한국, 일본 작곡가의 음악도 발굴하고 싶고요. 미국에서의 클래식은 부유한 노년층의 전유물인데, 더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듣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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