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고진 반란에 리더십 타격

러 국방장관 경질 가능성 커져

일부 내년 대선출마 포기 전망

핵무기 통제력 상실 우려까지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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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무장반란으로 블라디미르 푸틴(사진) 정권이 23년간의 ‘철권통치’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자신의 오랜 심복마저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난 데다, 반란 수습을 위해 바그너 측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한때 ‘차르(러시아 제국의 황제)’로 불렸던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은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은 모습이다. ▶관련기사 3면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입지 약화로 내년 대통령 선거 출마까지 포기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국제사회는 푸틴 정권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도발과 공세를 강화함으로써 리더십 불안 잠재우기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5일(현지시간) 반란을 이끌었던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 수장은 자신과 갈등을 빚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경질되고, 크림반도 합병 과정에서 영웅으로 떠오른 알렉세이 듀민 툴라 주지사가 새 국방장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 “26일 알렉세이 듀민이 공식적으로 러시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될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국방부 장관을 교체하라는 바그너 측의 요구를 러시아 정부가 수용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국방장관 교체는 푸틴 대통령이 반란 저지를 위해 프리고진에게 ‘항복’한 것과 같으며, 취약해진 리더십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미 푸틴 대통령은 반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그가 부하처럼 대해왔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도움을 받으며 권위에 치명상을 입은 상태다.

전 러시아 정부 고문인 키릴 로고프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푸틴은 프리고진을 물리치기 위해서 양보하고, 항복해야했다”면서 “푸틴의 취약함이 공개적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CNN은 “참모진의 변화에서 우리는 ‘포스트 푸틴’의 시대를 엿볼 수 있다”면서 “이는 푸틴 시대의 종언처럼 느껴진다”고 전했다.

러시아 내부 반란을 예의주시해 온 미국과 우크라이나도 이번 반란이 푸틴 대통령의 약화된 내부 통제력과 정권 균열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반란으로 푸틴의 통치 약점이 드러났다”면서 “세계는 러시아의 보스가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고, 바그너 반란 사태 이후 전황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역시 CNN 등 방송에 잇따라 출현해 “(러시아에서) 전에 없었던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며 “혼란이 앞으로 며칠, 몇주 간 더 전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바그너 반란으로 푸틴 대통령이 입은 정치적 타격은 단기간에 수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이 쌓아 온 ‘러시아의 수호자’로서의 입지가 반란과 함께 한순간에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정치분석가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국민들이 푸틴을 사랑하는 것은 그가 가져다 준 정치적 안정감과 국가의 안전”이라면서 “그것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2020년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의 기반을 마련한 푸틴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포기할 수 있다는 추측까지 나온다.

러시아가 불안정한 내부 분위기를 통제하기 위해 외부 공세를 강화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흔들리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더욱 치명적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궁지에 몰린 러시아 지도부가 도발 행위를 감행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도 대러 행동을 하는 데 있어 망설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반대로 반란이 러시아군의 사기를 떨어트려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크라이나에 유리하게 전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매체는 “혼란이 러시아 방어선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징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더 큰 우려는 러시아가 가진 핵무기다. 반란을 계기로 4500여개의 핵을 비축하고 있는 러시아 대통령이 핵 사용에 대한 지휘권과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이 내부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국제 사회를 향한 추가 ‘핵 위협’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적 싱크탱크인 독일 마샬 펀드의 이안 레서 부소장은 “우려의 핵심은 러시아의 군사적 통제의 예측 가능성이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핵 무기”라면서 “안정성을 잃은 정권이 생존을 위해 공격적인 접근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매튜 번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공개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이번 반란으로 러시아 핵 무기의 안보 상태가 바뀐 것은 없다”면서 “이번 반란은 핵 보유국들이 미래에도 안전하게 핵무기를 관리할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미정·원호연 기자


balm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