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주민들 ‘씻을 권리’ 보장 어려워
12가구가 수도꼭지 3개 나눠 써
화장실 없고 온수 안 나오고 잠금 장치 없는 곳도
[헤럴드경제=박지영·정목희·김빛나 기자] 1평 남짓한 공간은 팔을 벌리면 문 밖으로 팔이 빠져나갔다. 창문이 없어서 지린내가 훅 올라왔다. 한 켠에는 초록색 때밀이와 세숫대야와 빨래판이 걸려있었다. 비누통에는 초록색 몽당 비누가 놓여있었다. 수도꼭지는 끼익 소리를 내며 졸졸졸 흘렀다. 이 건물 2층에는 4가구가 산다. 수도꼭지는 단 한 개다.
지난 1일 방문한 서울 돈의동, 창신동, 영등포 쪽방촌의 ‘평균 이상’인 화장실 모습이다. 온수가 제공되고 샤워기가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못한 곳은 화장실에 잠금장치가 없거나, 온수가 나오지 않거나, 샤워기가 없어 대야에 물을 담아 놓고 바가지를 이용해 씻어야 한다. 쪽방에선 당연하게도 화장실은 세입자 공용이다.
서울의 한 쪽방촌에 사는 김모(67)씨는 “여름에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죽죽 난다”며 “얼굴이나 손만 겨우 씻지, 샤워를 하긴 뭐해서 한 달에 4번 목욕탕에 가서 씻는다”고 했다. 이날 최고 기온은 34.2도에 달했다.
폭염에도 쪽방촌 주민들은 ‘씻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화장실 겸 세면시설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쪽방촌에 거주하는 안모(70)씨는 거동이 불편해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한 건물에 20가구가 사는 이 건물에는 아예 화장실이 없다. 안씨는 “몸이 성한 사람들이야 하루에 1번 씻을 수 있지, 나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찜질방에 가서 샤워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다”며 “너무 더운데 샤워를 마음대로 못하니까 찝찝하기도 하고 힘들다”고 했다.
화장실이 없으니 씻는 것 이전에 볼 일 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안씨는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건물 밖으로 나와서 공용화장실을 써야 된다”며 “남동생 도움을 받아 볼 일을 보러 3층까지 겨우 올라간 적도 있다”고 했다.
잠금장치가 없는 화장실도 있었다. 박모(63·여)씨는 “남자들이야 더운 날씨에 훌러덩 벗고 씻으면 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며 “무서워서 옷 벗고 어떻게 씻냐. 하루에 머리 한 번, 얼굴 한 번 씻는게 다”라고 했다. 황모(76)씨는 “(오전)9시에 한 번 목욕차가 올 때 샤워 한다”며 “저녁에는 샤워차가 안 오기 때문에 밖에서 땀을 식히고 들어간다”고 했다.
씻는 것이 열악한 쪽방촌의 주거환경은 통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2022년 ‘서울시 쪽방 건물 및 거주민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시내 5곳 쪽방촌(돈의동‧창신동‧남대문‧서울역‧영등포)에 설치된 수도꼭지 수는 주택당 평균 2.9개로 나타났다. 주택당 평균 방 개수는 12.3개다. 12명이 수도꼭지 3개를 나눠 쓰는 셈이다. 화장실이 없는 주택도 19.4%로 나타났다. 외부 화장실을 사용하는 주민들도 10명 중 1명(11.9%)에 달했다.
고작 1평(약 3.3㎡) 남짓한 쪽방촌 방의 평균 월세는 2021년 기준 25만4000원이다. 전세+월세로 사는 경우 평균 보증금은 915만2000원, 월세 26만2000원이었다. 전세로 사는 경우 평균 전세 보증금은 3150만원이다. 좁은 공간과 화장실이 변변찮은 주거시설을 생각하면 싸다고 할 수 없는 금액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쪽방 주민들을 “서울에서 가장 비싼 동네에 가장 허름한 집에서 가장 비싼 월세를 내고 사는 분들”이라고 표현했다.
서울시는 쪽방촌 주민들의 ‘씻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올해 3월부터 3년간 ‘동행 목욕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월 2회 목욕 바우처를 지급해 인근 목욕탕에서 씻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7월과 8월 여름철 특별보호대책 기간에는 월 4회 지급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이용률은 45% 수준이다.
하지만 이처럼 공적 영역에서 씻을 권리를 보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다보니 건물주, 즉 임대인들이 더 배려해야 한다는 제안이 뒤따라 나온다.
송아영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씻을 권리는 기본권으로, 주거지로서 역할을 하는 곳에서 생활할 권리를 포함하는 것”이라며 “특히 씻지 못하는 건 위생과 청결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전혀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쪽방촌은 임대인이 마치 없는 것처럼,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고, “쪽방촌 거주민들이 불법 점유를 한 것도 아니고 정당하게 임대료를 내고 거주를 하는 만큼, 임대인도 그들의 의무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영민 돈의동 쪽방상담소 소장은 “매년 필요한 게 생기고, 그걸 보완하고 지원을 하지만 결국 세금이 들어가는 부분”이라며 “임대료를 받는 건물주들이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있다. 임차인들도 돈 낸 만큼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지적 앞에서 쪽방촌 집주인들도 할 말이 있다. 대개는 재개발을 앞둔 옛 건물이거나 건물 자체 구조상 확장이 어려워 화장실이나 샤워시설을 확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내 쪽방촌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A씨는 “재개발을 하는데 화장실을 어디다 더 만들 수 있느냐”며 “굉장히 오래된 건물이라 화장실을 증축하기보다 나중에 재건축이 되면 다른 방으로 옮겨준다거나 해야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임대주 B씨는 “우리는 다른 집들이랑 다르게 5년 전 화장실을 리모델링 하기도 했다”며 “우리 같이 비누하고 휴지 다 주는 곳이 없다. 그거 가지고 열악하다고 할 수 없다”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김형옥 영등포 쪽방상담소 소장은 “물 데우는 것도 관리인한테 동의를 얻어야 하는 곳도 있다”면서 “공간을 바꾸면 되는데, 쉽게 바꿀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화장실, 세면시설 확충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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