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한국학 강좌 첫 개설,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의 전통문화 알리기 외길…독일 한국학 박사 1호 베르너 사세 교수가 말하는 한국인 · 한국문화
1966년 나주에서의 추억 잊어버릴까 시작한 한국학 공부가 내 인생 바꿔…독일서 한국학 공부한 이들은 모두 내 제자들
41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은 느림보다 빠름에 익숙해져…양복 입고 아파트 살면서 외국에만 나가면 한복·한옥의 아름다움 얘기하는 한국인들 너무 이상해요
유교문화가 보수적? 되레 혁명적이죠…정권 잘못하면 국민 따르지 않는다고 가르치는게 유교. 민주주의는 한 번 했다고 완성되는게 아니고 계속 싸워야죠
역사 소개없이 현대적인 것만 강조하는 한류는 미국문화일뿐…전통문화 제대로 알리려면 중국·일본과 차별화된 ‘한국만의 것’ 찾아내야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자 완연한 초겨울의 풍경이 펼쳐졌다. 국도에서 꼬불꼬불한 마을길로 접어들자 손으로 소박하게 쓴 ‘웃는돌’ 표지판이 나타났다. 푸른 눈의 한국학자 베르너 사세(72) 전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석좌교수와 한국무용의 파이어니어 홍신자(73) 무용가가 3년 전 결혼해 살고 있는 곳이다.
‘웃는돌’에 도착하니 사람 키가 넘는 높이의 나무계단과 그 위의 목재 데크, 목조주택이 먼저 눈에 띈다. 독일의 어느 시골집처럼 바람에 쓸려 온 낙엽이 나뒹군다. 계단을 오르자 사세 박사가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하고 능숙한 한국어로 맞는다. 멋진 수염에 중절모와 개량한복, 회색 머플러가 잘 어울리는 선비다.
‘웃는돌’은 홍신자 씨가 20년 전 창단한 ‘웃는돌무용단’이 있었던 곳으로, 한때 한국현대무용의 산실 역할을 하며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지금은 노부부만 거주하고 있다. 마당 역할을 하는 넓은 데크를 중심으로 주방 겸 거실, 작업실, 침실 등이 별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주방 겸 거실에서 사세 박사가 원두를 직접 갈아 만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그의 삶과 한국문화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선비가 지나가는 객을 맞아 지혜를 나누는 것 같은 편안한 대화였다. 거의 끝나갈 무렵 홍신자 씨가 외출했다 돌아와 과일을 나누며 그들 ‘신혼부부(?)’의 이야기도 들었다.
▶유럽에 한국학의 씨앗을 뿌려온 ‘세계인’의 삶=날씨 얘기부터 꺼냈다. 겨울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라며 “지금 독일도 무척 춥겠죠?” 하고 물으니 이웃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담긴 답이 돌아왔다.
“독일에선 이미 눈이 왔어요. 그렇지만 독일의 집들은 여기보다 튼튼하고 난방시설이 잘돼 있는데, 여기는 문제가 많아요. 아파트는 그렇지 않지만, 보통 시민들이 사는 집은 불편이 많아요. 집이 너무 약하고, 보통 할머니들은 돈 많지 않으니까 방 하나만 난방하고, 다른 방이나 화장실 가면 춥고 그렇죠. 문제가 많아요.”
홀로 사는 이웃집 할머니의 난방 실태까지 꿰차고 있는 사세 박사.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47년 전인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인이 전남 나주의 호남비료공장 기술자로 파견됐을 때 함께 따라왔다. 장인이 한국의 발전을 위해 기술학교를 설립해 1970년까지 나주에서 2년, 서울에서 2년을 보냈다.
“지금은 자동차나 TVㆍ휴대폰 같은 한국 상품도 많고 한류도 있지만, 당시엔 한국을 소개하는 책이 한 권도 없었어요.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밖에 안될 정도로 가난했죠. 하지만 여러 가지 새로운 것들을 많이 봤어요. 귀국해서 한국에서 얻은 4년 동안의 기억을 잊어버릴까, 어떻게 할까 하다가 한국학을 공부하게 됐죠.”
한국에서의 소중한 기억이 아까워 시작한 한국학 공부가 인생을 바꾸었다. 당시 독일에서 일본과 중국학은 가르쳤지만 한국학은 없었다. 그는 1970년 보훔대학 동아시아학과에 입학해 1975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의 한국학 박사 1호다. 이후 보훔대학, 함부르크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면서 두 대학에 한국학과를 개설했다. 지금 두 대학에 100명 정도가 공부하는데, 모두 사세 박사의 후예들이다.
함부르크대학에서 정년 퇴직한 다음, 2007년 한국으로 돌아와 2010년까지 한양대에서 한국문화를 가르쳤다. 이때 한국무용에 한 획을 그은 홍신자 씨와 운명적으로 만나 2010년 결혼해 제주에 1년 살다가 작년 봄에 안성 웃는돌로 왔다.
좀 짓궂은 질문인지 알지만, 국적을 물었다.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말한다.
“여권 말씀이죠? 여권은 독일여권, 사람은 세계사람, 사는 곳은 한국. 전에는 투어리스트 비자를 갖고 있어 3개월마다 한 번씩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오곤 했는데, 지금은 (영주권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상관없어요. 결혼했으니까. 하하하.”
▶‘말 따로 행동 따로’ 한국인의 전통문화 인식에 대한 충고=사세 전 교수를 만난 것은 한국인과 한국문화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최근 한국문화 비평서인 ‘민낯이 예쁜 코리안’을 출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부처의 말처럼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자기 얼굴을 볼 수 없는 존재 아닌가. 독일인 한국학자의 눈에, 한국인이 간과한 무엇이 있지 않을까.
‘민낯이 예쁜 코리안’을 읽다가 한국인이 국수주의적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문화에 대해 지나친 우월감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 인상적이었다. 사세 박사는 한국인도 사람이니까 근본은 비슷하다면서 뼈아픈 지적을 놓치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하는 말 중에 이상한 것이 있어요. 자신은 양복을 입으면서 외국에 나가면 한복을 얘기해요. 아파트에 살면서 한옥의 아름다움을 얘기해요. (자부심이 담긴) 말과 (그걸 실천하지 않는) 실태가 너무 이질적이에요. 한국 사람들 전통은 머리속이나 상상, 박물관에 있어요. 그걸 극복해야 한다고 책을 썼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한복을 입고, 한옥에서 산다는 것은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사세 박사는 고개를 저으며 그 단절을 안타까워했다.
“전통이 끝나버려서 어려움이 있어요. 가령, 한국인들은 한복 얘기하면 예복만 얘기해요. 예복은 어디서나 불편하죠. 서양도 그래요. 지금은 좌나 우익 사람들, 예술가 같은 사람들만 한복을 입어요. 하지만 개량한복은 아주 편리해요. 생활에 알맞게 고친 것이죠. 한옥도 돈 있는 사람만 짓는데, 그건 19세기 한옥이에요. 새로운 재료로 새로운 한옥을 만들어야 해요. 한옥의 좋은 점, 예를 들어 공기 순환, 계절에 따른 햇볕 조절, 습기 조절의 장점을 살려 지으면 돼요. 연구해야 해요.”
사세 박사는 사라져가는 한국 전통문화에 대해 한국인보다 더 아쉬워했다.
“경제는 발전했는데, 문화는 시간이 없어서 발전을 못했습니다. 15~20년 전에는 하루 12시간 일했어요. 너무 피곤해서 문화를 생각할 시간이 없었어요. 지금은 여유가 있어요. 전통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살아서 계속 발전해 가는 거예요.”
▶ “유교문화가 보수적이라고요? 아니에요. 혁명적이에요”=대화는 유교로 이어졌다. 한국의 전통에는 유교가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는데, 낡은 것이다, 보수적이다, 봉건적이다 하면서 외면만 할 것이 아니라 계승해야 할 덕목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세 박사는 유교적 전통에서 현대인에 꼭 필요한 귀중한 가르침을 발견했다. 특히 교육이나 정치에 견해는 귀를 솔깃하게 했다.
“유교는, 역사처럼, 계속 재해석해야 합니다. 유교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내가 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 좋은 시민이 되는 것, 다른 사람들이 잘살도록 내가 달라지는 것을 의미해요. 그게 원 유교예요. 지배권(정치)도, ‘내가 왕이다’ 하는 사고방식은 19세기 식입니다. 유교는 내가 잘해야 다른 사람들도 잘한다고 가르쳐요.”
유교에서 21세기적 가치를 찾아내는 사세 박사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사실 덕치사상, 민의존중, 도덕 등은 혼탁한 오늘날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사람들이 유교가 보수적이라고 말하지만 혁명적이에요. 윗사람이 잘못하면 사람들이 따라가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공자는 힘있는 집안의 사람이 지배하지 말고, 지식이 많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가르쳤어요. 한국에서는 돈 있는 사람이 중요한 자리 차지하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 차이가 커졌어요. 그거 유교 아니에요.”
‘민낯이 예쁜 코리안’에서 사세 박사는 유교의 가치체계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빠른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공자의 논어 제1장이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로 시작하는 학이(學而)편 아닌가. 하지만 현대 한국교육에 대해서는 매서운 회초리를 든다.
“지금 학교교육은 학생들이 정말 공부하는 게 아니고, 시험만 통과하는 거예요. 한 번 통과하면 잊어버려요. 자기자신과 관계없이 외우기만 해요. 자신과 관계없는 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학생과 교수의 교류도 그래요. 50년 전에 비해선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학생과 교수의 교류가 사람과 사람의 교류가 아니에요. 제일 중요한 것은 동등하게 질문하고 반대 생각이 있다면 제시하면서 토론하는 거예요.”
▶한국인의 행복을 위한 외국인 한국학자의 돌직구=사세 박사가 매료된 것처럼 한국에는 아름다운 전통문화가 있고, 한국인들 사이에선 단기간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자부심도 강하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잘 알릴 방법은 없을까. 그의 눈에는 많은 문제가 보인다.
“첫째는 북한 문제를 항상 센세이션하게 다루는 게 문제예요. 나도 북한 몇 번 다녀왔는데,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에요. 둘째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말하면서 역사를 제대로 소개하지 않아요. 현대것만 소개해요. 한류도 좋지만, 그건 한국문화 아니에요. 미국문화에요. 역사와 전통문화를 알려야 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까. 사세 박사는 전통에 초점을 맞춘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중국ㆍ 일본의 철학ㆍ문화와 다른 한국의 특색과 차별성을 소개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국제 콘퍼런스에도 나가고 고전문학도 번역해 출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를 한국 내부로 돌렸다. 경제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유난히 많은 것은 왜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사세 박사의 견해를 듣고 싶어 최근 상황을 주고받던 중 민주주의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주의요? 그거 한 번 했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고, 계속 싸워야 합니다. 독일도 민주주의 이룩한 지 60년 됐지만 계속 고치는 과정에 있어요. 그게 민주주의 근본입니다. 선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정권과 자본을 잡은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정권이나 자본이 하는 일을 시민들이 잘 알 수 없으면, 민주주의가 아니에요. 사람들이 정치인을 깡패라고 하는데, 똑같은 사람이에요. 지금 비판하는 사람이 정권 잡으면 똑같을 거예요. 그러니까 잘 봐야 하는 겁니다.”
성숙한 시민, 깨어 있는 시민이 진보를 가져온다는 상식을 되새기게 하는 말이었다. 사세 박사는 시민들이 방관한다면 “독재가 다시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인의 행복도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 (행복도가 낮은 건) 빠른 발전 속에서 근거가 없어졌기 때문이에요. 흔들리고 있어요. 돈이나 소비, 물질적인 것에 매달리니 문화적인 것이 없어졌어요.”
사세 박사는 한국인의 행동 중에서 이상한 것 중의 하나가 “한국인들이 지금 여기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 또는 과거에 사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들었다.
“가령 식사할 때 정말 그 음식을 즐기는 게 아니라, TV보거나 그냥 빨리 먹거나 해요.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거죠. 어떤 여자가 가방을 갖고 있다면, 내가 좋은 가방 갖고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 것만 봐요. 다른 사람 가방 멋있다, 이런 생각해요. 그러면서 아직 성공한 거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기 자랑도 안해요.”
▶“내일? 계획? 그런 거 없어요. 나는 오늘에 살아요”=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홍신자 씨가 거실로 들어왔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정서와 한(恨), 억눌린 인간의 내면과 영혼을 파격적인 춤사위에 풀어낸 전위 무용가. 내면의 구도를 위해 인도로 훌쩍 날아가 영적 스승 라즈니쉬를 만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온 선구자. 70이 넘어 사세 박사와 황혼의 전통혼례를 올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하지만 거실에 나타난 모습은 안성에 사는 여느 초로의 여인 같다. 자유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근황을 물었더니 말을 아낀다. 안성에 웃는돌무용단을 설립한 후 20년이 됐다면서 이전엔 많은 사람들이 와서 북적였지만, 지금은 조용히 살고 있다고 한다. 사세 박사와 만남에 대해 물으니 배시시 웃으며 “다 인연으로 만난 것”이라고 한다.
사세 박사에게 한국에서의 생활에 만족하느냐고 물으니 껄껄 웃으며 말한다.
“여기 사는 데 불편이 없어요. 친구들도 사귀기 좋아요. 나는 세 가지의 차별, 긍정적인 차별을 받아요. 첫째는 백인, 둘째는 노인, 셋째는 교수라는 거죠. 그 차별(?) 때문에 잘 살고 있습니다. 근데 그게 문제에요. 나는 원래 아이러니, 농담 잘하는 사람인데, 한국에서는 그거 못 써요. 그거 하면 사람들이 믿어버려요. 하하하.”
그들은 가끔 이웃과 어울리며, 막걸리 초대도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이 개발되면서 많이 변하고 있어 좀 더 먼 곳으로 떠날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내년 공연을 구상하고 있어요. 한국적인 소재에 유니버설한 가치를 담는 것을 구상하고 있어요. 내년부터 제주도에서 힐링 페스티벌을 열 거예요. 여기서 20년 있었는데, 익숙한 것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 합니다.”(홍신자)
사세 박사에게 계획을 물었다. 역시 대답은 ‘지금과 여기’였다. “그냥 지금 상태에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앞으로다, 지금 사는 것에 만족한다. 그거죠. 하하하.”
노부부는 결혼 기념사진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해맑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주고받는 귀여운(?) 모습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한국 전위 무용가와 한국문화의 아름다움에 빠진 벽안의 선비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멋있게 나이드는 아름다운 사람의 충만함이 전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는 ‘웃는돌’에 황혼이 내리고, 데크의 나뭇잎도 조용히 내려앉았다. 나무와 바람과 하늘 속으로 ‘웃는돌’이 깃들어 들어가는 듯했다. 다시 들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아쉬움이 남는 발길이었다.
hjlee@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한국학 박사1호’ 베르너 사세 교수는
▷1941년 독일 출생 ▷1966년부터 4년 동안 전남 나주와 서울에 거주 ▷1970년 독일 보훔대학 동아시아학과 ▷1975년 독일 보훔대학 박사(논문: 계림유사에 나타난 고려방언 연구) ▷1975~1992년 독일 보훔대학 교수, 한국학과 개설 ▷1992~2006년 독일 함부르크대학 교수, 한국학과 개설 ▷2007~2010년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석좌교수 ▷2010년 현대무용가 홍신자 씨와 결혼 ▷2012년~ 경기 안성 ‘웃는돌’에 거주하며 집필과 강연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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