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新 영토전쟁’

막대한 고속도로 보수 비용 마련위해 日 정부, 긴자 부근 1km 공중권 매각

2005년 美 뉴욕 맨해튼서 공중권 거래 아파트 분양업자 3.3㎡당 1만5302弗 지불

한국에선 별도권리 아닌 지상권 연장선 초고층 고밀화 시대 공중권 개념 도입을

‘내 집 앞 건물이 영원히 증축을 하지 않기로 약속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망권 분쟁을 우려하는 부동산 투자자들이 한 번쯤은 꿈꿨을 법한 얘기다. 내 집 주변 건물들이 증축할 경우 내 건물의 조망권이 훼손된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해외에서 나온 묘안이 공중권 매매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미국과 일본 등 부동산 초고층 고밀화 개발이 시작된 해외 일부 선진국에서는 이미 공중권 개념이 실제로 적용되고 있다.

미국의 유명 부동산업자 도널드 트럼프는 뉴욕 소호 지역에 최고급 호텔을 지으며 주변 건물의 공중권을 모두 사들였다. 이 공간을 특별한 용도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대신 자신이 지은 최고급 호텔에서 도심을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권을 영구적으로 확보했다. 공중권을 모두 팔아버린 주변 건물주들은 건물을 더 높이 지을 수 있는 권리를 상실했다.

즉, 공중권이란 어떤 부지 위에 최대한의 면적을 지을 수 있는 용적률을 인접한 땅 주인들이 사고팔 수 있게 한 일종의 권리다. 원래 10층을 지을 수 있는 땅인데 나는 5층까지만 지을 테니 나머지 5층을 더 지을 수 있는 권리는 누군가에게 팔아넘기는 식이다.

막대한 고속도로 보수 비용 마련위해...日 정부, 긴자 부근 1km 공중권 매각......2005년 美 뉴욕 맨해튼서 공중권 거래...부동산 개발업자 3.3㎡당 1만5302弗 지불 ......한국에선 별도권리 아닌 지상권 연장선...초고층 고밀화 시대 공중권 개념 도입을

▶국내에선 생소한 공중권 개념…미국ㆍ일본에서는 일상화=일본 정부는 지난 5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고속도로 보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도로 위 공간을 이용할 권리를 주변 빌딩에 팔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시 오타 아키히로 국토교통상은 정부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도쿄도 주변 수도고속도로의 보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공중권을 민간에 매각할 방침이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반지하화된 도쿄 중심가인 긴자 부근 1㎞ 주변의 공중권을 파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됐다. 여기서의 공중권이란 개념은 도로를 반지하화하고 그 위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다. 다시 말하면 도로 위 공간의 미사용 용적률을 사고파는 것이다.

1960년대 건설된 일본의 수도고속도로는 노후화 보수에만 약 9100억엔(10조원)이 들 전망이다. 천문학적인 거금이 필요한 일본 정부로서는 공중권을 매각해 낡은 인프라를 보수해야겠다는 묘안을 짜낸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높기로 정평이 나 있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는 지난 2005년 건물 위 허공이 3.3㎡당 1만5302달러(당시 약 1580만원)에 팔리면서 공중권 개념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한 부동산 개발업자는 맨해튼 지역 아파트 신축 부지 주변 파크 애비뉴와 이스트 60번가 두 건물의 공중권을 총 3700만달러(당시 약 382억원)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개발업자는 건물의 공중권을 인정해 파크 애비뉴에 있는 교회에 3000만달러, 이스트 60번가에 위치한 그롤리어 클럽에 700만달러를 지급했다. 당시 감정평가사들은 맨해튼 평균 공중권 가격을 3.3㎡당 7100달러 선으로 평가했다.

이 부동산 개발업자가 당시 생소했던 공중권을 거액을 주고 구입한 목적은 자신이 새로 지으려는 아파트의 조망권 보호였다. 자신이 확보한 부지에 35층짜리 고급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려던 그는 센트럴파크가 내려다 보이면 현 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분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만약 이때 이 개발업자가 앞 건물의 공중권을 사지 않았다면 앞 건물이 증축할 경우 조망권이 훼손돼 아파트의 가치가 떨어졌을 것이다.

▶일상화된 공중권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그동안 생소했던 공중권 개념은 현대 도시가 점차 초고층 고밀화되면서 일상적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중권에 대해 따로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민법상 구분지상권이라는 개념으로 토지개발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그 권리만 따로 떼어내 사고팔 수는 없는 실정이다.

미국에서 공중권 개념을 활용해 지어진 대표적인 건물은 지금도 뉴욕의 명물 고층빌딩으로 손꼽히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그랜드센트럴 역사 옆 메트라이프 빌딩이다. 웅장한 화강암과 대리석 외관, 2500개의 별을 수놓은 중앙홀 천장 벽화가 일품인 그랜드센트럴 역사 건물은 1913년 지어져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지만, 1950년대를 정점으로 기차 여행이 내리막길을 걷자 철거 위기로 내몰렸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낡은 역사를 허물고 초고층 건물을 짓겠다고 나섰고, 반대론자들은 역사성과 건축적 가치를 들며 철거를 반대했다. 이때 철도회사와 개발업자들이 궁리 끝에 내놓은 개념이 공중권이다. 이 권리를 사고팔면서 건물은 유지하되 개발업자는 원하는 건물을 신축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건물을 보존하려고 할 때 공중권 개념을 두루 활용한다. 세계적으로 업무 빌딩의 모범이라고 일컬어지는 뉴욕 시티콥빌딩도 바로 옆 유대인 교회로부터 공중권을 사들여 신축한 것이다. LA의 랜드마크인 US뱅크타워도 맞은편 LA 공공도서관으로부터 공중권을 사들여 지은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다수의 국가에서는 유구한 전통이 서려 있는 건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도심 개발붐에 편승해 날로 헐리는 건물 수가 늘어나고 있다. 도시의 역사와 활력, 두 마리 토끼를 쫓는다면 공중권 같은 해외의 신개념 도입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김수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