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라는 제 1바이올린과 가슴 뛰는 사랑을 했고, 제 2바이올린으로부터 안정을 얻었으며, 첼로를 의지하고 흠모했다. 제 2바이올린은 평생 제 1바이올린의 그늘에 묻혀 뒷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악보에 매인 안전벨트를 풀고 모험과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제 1바이올린의 자리는 화려했고 엄격했으며, 첼로는 묵직하고 조화로웠다. 그렇게 보낸 25년의 현악사중주. 균열은 노쇠한 첼로로부터 왔다. 활은 가끔 떨었고, 현 위에서 멈칫했다. 갈 길을 잃고 튕겨나간 첼로의 음은 제 1바이올린의 활기 없는 자기도취를 조롱했고, 제 2바이올린의 야심과 열등감을 자극했으며, 비올라의 사랑과 균형을 회의하게 했고, 첼로의 마지막 생을 비탄으로 몰고 갔다. 우아한 클래식이 무대 밑으로 내려가자 감상적인 막장드라마가 됐다. 현악의 마지막 사중주는 다시 드레스를 차려입고 무대 위로 오를 수 있을까?
영화 ‘마지막 4중주’(감독 야론 질버만)는 인생이란, 막장 드라마와 우아한 클래식음악의 대위법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또 포즈(휴지기)도, 튜닝(조율)도 허락지 않고 내리 7악장이 계속되는 베토벤 현악 사중주 14번처럼 인생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연속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을 일러준다.
결성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둔 세계적인 현악 사중주단 ‘푸가’의 단원 4명이 주인공이다. 무려 3000회 이상의 공연과 투어를 함께해온 이들답게 완벽한 화음을 자랑하지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던 첼리스트 ‘피터’(크리스토퍼 월큰 분)가 파킨슨씨병 초기라는 진단을 받으면서 숨겨졌던 갈등이 조금씩 드러나고, 연주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한다. 제 2바이올린 주자인 ‘로버트’(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분)는 단 한번의 외도로 아내인 비올리스트 ‘줄리엣’(캐서린 키너 분)과 결별의 위기에 처한다. 아내를 향한 온전한 사랑을 의심받게 된 로버트는 가정생활의 위기를 겪는 와중에 아내의 옛 연인이었던 동료이자 제 1바이올리니스트인 ‘다니엘’(마크 이바니어 분)에 대한 비난과 열등감을 폭발시킨다.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히 재현해내는 엄격한 곡 해석을 추구해왔던 다니엘은 새로운 연인을 만나 삶과 음악의 영감을 받지만, 그의 사랑은 다른 단원들을 혼란 속으로 몰아간다. 아버지나 다름없는 첼리스트 피터의 병과 남편의 외도로 의지할 곳을 잃게 된 줄리엣은 충격에 빠진다. 연주자로선 사형 선고나 다름 없는 상황에 처한 피터는 이 모든 시련에도 불구하고, 베토벤 현악 사중주 14번을 선택한 마지막 공연을 강행한다.
이 영화의 주제곡이라 할 수 있는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4번은 베토벤이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좋아했던 곡이자, 후대 음악가들에게도 최고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4악장으로 이루어진 보통의 현악사중주와 달리 각기 다른 길이와 템포, 형식의 7악장으로 쉼 없이 연주하도록 돼 있다. 야론 질버만 감독은 “이는 연주자들이 중간에 튜닝을 다시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연주하는 동안 악기의 음은 어긋나고 하모니는 엉망이 된다. 때로는 조화를 이루고 때로는 혼돈으로 빠지는 우리의 인생과 관계가 바로 이렇지 않은가”라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음악만큼이나 개성이 뚜렷한 4명의 연기파 배우들이 보여주는 관록의 연기가 절창이다. 특히 최근 개봉작인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마스터’에서도 주연을 맡은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2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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