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수진 기자] 얼마 전 모 기업 홍보실 직원으로부터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저희 회장님 사진이 잘못 들어갔는데요. 바꿔 주실 순 없을까요?”
화들짝 놀랐습니다. 다른 사람의 사진이 들어가거나, 이름 또는 성을 잘못 쓰는 경우는 기자들 세계에선 ‘오보’와 다름 없습니다. 취재에 응해준 취재원에게도 큰 결례죠. 아무리 특종 기사를 써도 이런 치명적 실수가 행해졌다면 그 기사는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후다닥 제가 쓴 기사를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엥?’ 해당 기업 회장의 사진이 틀림 없었습니다. “사진은 문제가 없는데요?” 라고 말하자 “아 저희가 제공한 사진이 아니어서요 ”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화가 났습니다. 기사에 실린 사진은 저희 신문사 사진부 기자가 해당 기업 관련 행사 때 직접 촬영한 사진이었습니다. “언론이 기업에서 주는 사진만 써야 하는 건가요?” ‘뾰족한’ 목소리로 따져묻자 직원은 조심스럽게 “그런 건 아닌데 저희 회장님이 원하는 사진이 있어서…이걸로 바꿔주시면 안될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알고보니 기사에 실린 사진 속 모습이 ‘다소 풍채가 있어보이게 나왔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홍보실에서 제공한 사진 속 회장님은 발전된 사진 편집 기술 또는 조명에 힘입어 실물보다 젊고, 슬림하며 거기에 인자한 미소까지 짓고 있었습니다.
대기업 회장의 사진은 매우 중요합니다. 개인의 이미지는 물론 기업의 이미지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이유로 기업 홍보실에선 언론 배포 용 프로필 사진을 공들여 촬영해 보유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실물보다 젊고, 아름답고, 멋집니다.
재미있는 일화들도 있습니다. 모 대기업 2세는 십수년동안 사진이 바뀐 적이 없다고 합니다. “10년 넘게 같은 사진이라 사진으로만 그 분을 본 직원들은 실물을 보면 못알아본다더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또다른 대기업 2세는 단 한번도 공식적으로 사진을 공개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공개 행사 때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평소에도 언론에 사진이 찍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고 합니다. 업계 내에서는 ‘다소 강해보이는 인상 때문에 얼굴 공개를 꺼린다’는 소문도 있지만 진실은 오리무중입니다. 그의 얼굴이 몹시나 궁금했던 한 기자는 홍보실 직원에게 여러장의 사진을 들고와서는 ‘이들 중에 있는지 없는지만 말해달라’고 부탁한 일도 있다고 합니다.
사실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테니까요. 회장님도 사람이니, 어떻게 보면 오히려 인간적인 모습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냥 독자분들이 이 사실을 염두에 두시면 될 것 같습니다.
‘주의: 이 사진 속 인물은 실물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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