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화를 못 참는다. 화를 낼 일도 아닌데 도를 넘은 분노를 쏟아낸다. 그로 인한 피해가 자기 자신에게만 향하는 게 아니라서 더 문제다.
프로레슬링이 국기이다시피 한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지난 달 말 여자프로레슬링 경기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으로 한바탕 난리가 났다. 22세의 우락부락한 여성 챔피언 요시코가 한참 선배인 29세의 예쁘장한 상대 선수를 링 위에서 무참히 두들겨서 응급실에 보낸 사건이다.
이처럼 프로레슬링에서 실제 싸움을 벌이는 것을 뜻하는 ‘시멘트’라는 업계 용어가 있는 만큼 전에 없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상대 선수는 광대뼈, 코뼈, 안와저 등 안면에만 4곳 이상의 골절상을 입고 안면이 변형됐다. 무너진 얼굴을 재건해야 할 수준이다. 진짜 격투기에서도 이 정도로 심각한 부상은 좀체 발생하지 않는다.
가해 선수와 피해 선수는 평상시도 앙숙이었다고 한다. 가해 선수는 뺨을 먼저 맞자 눈빛이 바뀌더니 심판이 뜯어말리는데도 주먹으로 수십 차례나 항거 불능이 된 피해 선수를 두들겼다. 각본이었든 아니었든 뺨 한대 맞은 게 이런 폭력행위를 정당화 해주는 동기,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비슷한 시기 국내 연예계에서는 여성 방송 출연자가 함께 출연한 이에게 갑자기 욕설을 퍼붓는 바람에 녹화가 중단되는 해프닝이 벌어져 논란이 되고 있다. 심각한 육체 폭력이 아닌 것은 천만다행이지만 정신 폭력이라는 점은 같다.
배우 이태임 씨는 지난달 24일 진행된 MBC ‘띠동갑내기 과외하기’ 녹화 현장에서 게스트로 참여한 3살 연하의 가수 김예원 씨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자 고정출연중이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공식사과까지 해야 했다.
이 씨의 매니지먼트사는 사과문에서 “이 씨가 이제까지 출연작에서 신체 특정부위가 이슈화되고 악플이 이어지면서 심각한 불면증과 컨디션 난조를 겪었다”면서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해 욕설을 하게 됐다고 시인했다.
프로레슬러 요시코와 배우 이태임 씨의 사건을 접하면서 마음만은 내가 곱다고 우쭐했던 나는 이내 며칠 전 저지른 일이 떠올라 금새 창피해졌다. 의견을 주고 받는 회의에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시를 받자 저급한 단어를 섞어가며 언성을 높였다. 더 무서운 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주위 질책을 듣고서야 내가 무슨 말을 꺼냈는지 깨달았다는 점이다.
의학적으로 이처럼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도를 지나친 분노를 쏟아내거나 이상행동을 보이는 것을 분노조절장애라고 한다. 특정인들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2일 발표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이런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가 2009년 3720명에서 지난해 5544명으로 49%나 늘었다.
최근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흉악범죄 중 일부도 이런 정신질환이 간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는 모양이다. 유발인자를 제어할 사회적 대책과 발병시 치료할 의료적 대책도 중요하겠지만 가장 절실한 것은 자기 통제다.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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