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브스선정 美부호 492명중 51명 이민자 中 후이왕머우, 홍콩 국적+호주 시민권자 장도원 회장은 美이민후 패션사업 대성공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성연진ㆍ김현일 기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의사’ 패트릭 순 시옹의 아버지는 중국 광동성 출신이다. 그러나 그가 자란 곳은 중국이 아닌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다. 스물 셋에 의사가 돼 요하네스버그 병원에서 인턴십을 마쳤지만, 박사학위는 캐나다에 있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에서 받았다. 본격적인 외과의 생활은 캐나다가 아닌 미국 캘리포니아의 UCLA 병원에서 시작했다. 췌장암 치료제인 아브락산(Abraxane)을 개발하고 자신의 제약사를 대기업에 매각한 것이 ‘슈퍼 닥터’의 반열에 오른 계기가 됐다. 패트릭의 순자산은 123억 달러, 한화로 약 13조6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슈퍼부호는 세계시민=패트릭 순 시옹의 일대기는 ‘세계 시민’의 일례를 보는 듯하다. 그가 어느 나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는가를 묻기 어렵다. 국적이 특정 국가라기보다는 ‘지구’라고 할 수 있는 빌리어네어는 패트릭뿐만이 아니다. 세계가 하나의 국가처럼 움직이는 세계화 시대, 그 중심에 선 상위 0.01% 슈퍼 부호는 어디서도 만날 수 있다.
지난해 포브스는 미국의 빌리어네어 492명 가운데 51명이 이민자라고 집계했다. 이들은 26개 국가에서 왔으며 주로 IT나 금융업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장도원 포에버 21 회장 부부도 있다. 서울 명동에서 커피 배달을 하다 1981년 미국 이민을 결심한 그는 경비원과 주유소 종업원, 커피숍 직원으로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1984년 부인 장진숙 씨와 함께 10대를 타깃으로 한 옷가게가 포에버 21의 시작이 됐다. 첫해 7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던 이 옷가게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37억 달러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성장했다. 그가 커피를 나르던 명동 한복판에서도 포에버21 매장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재 그들의 순자산은 60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민자는 아니지만 라오스 최대 기업인 오세영 코라오 그룹 회장도 국경을 넘은 부호로 꼽힌다. 그는 1997년 라오스에서 누나에게 빌린 돈으로 한국 중고차 5대를 들여와, 중고차 유통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점점 성공했다. 오 회장은 라오스에서 오토바이 조립과 자동차 제작, 전자제품 유통, 금융 사업까지 진출하며 ‘라오스의 삼성’이 됐다. 라오스뿐 아니라 캄보디아, 미얀마까지 아세안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홍콩의 금융사업 통합관리를 위한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싱가포르에서도 투자 자본을 모았다.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코스피에 상장했다. 현재는 지분 가치만 4000억원대에 이른다. 상장주식 기준 한국 부호 50위권에 속하는 규모다.
국제 회계ㆍ컨설팅회사 언스트앤영의 ‘2013년 세계 최우수 기업가’로 선정된 함디 울루카야 초바니(Chobani) 회장 역시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케이스다. 터키 동부 작은 마을에서 자란 그는 영어를 배우러 1997년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미국을 방문해 요구르트 맛을 보고 혹평하던 것에 착안해 창업을 결심했다. 터키에서 먹던 그리스식 요구르트 회사 초바니는, 그를 15억 달러 순자산의 빌리어네어로 만들었다.
▶젊은 부호들, 환경이 더 중요=이 시대 혁신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부호들도, 현재 사는 곳과 고향이 일치하지 않는다.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러시아 출신이고, 이베이 창업자 피에르 오미다이어는 프랑스 출신이다. 마크 저커버그와 함께 페이스북을 만든 하버드 동창생 에드와도 세버린은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태어났다. 전기차 혁명을 일으킨 테슬라 모터스의 엘론 머스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이다.
아예 여러나라의 국적을 가진 이도 있다. 중국 부호 후이 왕 머우는 포브스에선 국적을 홍콩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호주 시민권도 갖고 있다. 지난해 호주 시드니에 아파트와 호텔 등 부동산을 4억 달러에 매입하면서, 현지 매체는 그를 중국 출신 호주 시민 가운데 최고 부호로 표현했다.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섬유 산업과 무역 중개업으로 홍콩에서 부를 쌓아 부동산으로 확대한 그의 자산은 53억 달러. 중국 본토에도 상당한 투자처를 갖고 있다.
빌리어네어의 소속이 어디인지를 따지는 일은 앞으로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를 위해 이주를 결심했던 이전 세대와 달리 현재 30~40대의 젊은 부호들 중엔 교육에서 정치사회 그리고 세금까지 각종 ‘환경’을 고려하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국경을 넘어선 ‘글로벌 시민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영국의 부동산 컨설팅 업체 나이트프랭크는 최근 부호들의 해외 이주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자국의 경제 사정이 안정되지 않은 인도나 중국의 신흥 부호들의 이주가 눈에 띄었다. 중국에선 2003년부터 2013년까지 백만장자 7만6200명이 해외로 이주했고, 인도는 같은 기간 4만3400명이 인도 국적을 지웠다. 프랑스 역시 3만1700명이 이 기간 해외로 거처를 옮겼다. 러시아 신흥재벌 1만4000명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세계 시민이란 용어를 두고 종종 논란이 일기도 한다.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 에드와도 세버린은 10살 때 브라질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 출신이다. 하버드대학 동창인 마크 저커버그와 함께 페이스북을 창업한 그는 2012년 페이스북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미국 국적을 버리고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했다. 당시 미국 상원의회에서 세금 탈루를 위한 이민이 아니냐는 지적에 “나는 세계 시민(global citizen)이라 싱가포르에 살기로 작정한 것”이라 말했지만 자본소득세가 없는 국가로의 이주는 여러 뒷말이 따랐다.
부호들의 움직임을 국경 안에 가둘 수 없는 시대. 그들의 사회적 책임 또한 글로벌하다. 패트릭 순 시옹은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자산의 50% 이상을 기부할 것을 약속했다. 거주하는 캘리포니아 지역 사회 병원에 수억 달러 기부에 나서기도 했다. 슈퍼 부호들이 세계인들에게 지닌 책임을 실천한 대표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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