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개그맨들은 “풍자는 코미디의 본령”이라고 입을 모은다. 1980년대 중반 재벌 기업의 회의 장면을 배경으로 정치와 재벌을 풍자한 ‘회장님 우리 회장님’, 고대 로마시대 원로원을 배경으로 정경유착을 꼬집은 ‘네로 25시’는 국내 최초의 풍자 코미디였다. 속 터지고 답답한 세상에서 ‘대중의 입’을 대신한 건 정치인이 아닌 현실감각이 뛰어난 코미디언이었다. 1980년대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 KBS2 ‘유머1번지’의 인기 코너로부터 이어진 풍자 코미디는 그 흐름을 잘 이어받는 듯 하더니 어느 순간 흐름이 끊겼다.

한때는 시청률 30%에 육박하는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탓에 ‘개그콘서트’(KBS2)는 주시하는 눈이 많았다. 연이은 소송과 징계를 받던 ‘개그콘서트’에선 2013년 이후 정치풍자가 자취를 감췄다. 최근 ‘도찐개찐’이 시사이슈를 건드려왔지만 경쟁 프로그램인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게 풍자의 영역을 완전히 내줬다. 흥미롭게도 PD교체와 더불어 시작한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 ‘민상토론’<사진>의 등장으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정치시사 풍자는 3단계의 틀을 갖추게 됐다. 그 첫 번째 단계는 풍자라기 보다 비판에 가까운 형식의 콩트다. ‘웃찾사’(SBS)의 ‘LTE뉴스’가 대표적이다. 이 코너는 빙빙 돌리지 않고, 직설화법으로 사안의 본질을 꿰뚫는다. ‘촌철살인’의 승부사다. 정치시사 코미디가 주춤하던 때에 ‘웃찾사’를 통해 이 코너를 기획한 개그맨 김일희는 “시사코미디는 어설프게 만들면 욕만 먹기 십상이다. 사안의 본질을 짚어가며 90%의 국민들, 서민들을 대변했다”며 “그 안에서 오는 통쾌함이 본질이다”고 말했다.

같은 프로그램의 ‘뿌리없는 나무’ 코너는 풍자코미디의 2단계로 해석된다. 캐릭터와 스토리를 통해 시대를 풍자하고 대중의 마음을 대변한다. 위엄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왕을 통해 시시각각 숨막히게 현실을 옥죄는 다양한 이슈를 짚는다. 이들 코너는 각각 직설화법과 해학적인 비판으로 사안을 풍자하며 기존 시사 및 코미디가 보여왔던 틀의 연장선에 있다.

‘민상토론’은 진화한 풍자코미디로, 가장 신선한 방식의 3단계에 속한다. ‘민상토론’에 직설화법이란 없다. 이 코너 안에서 저격수는 개그맨 박영진뿐이다. ‘토론’ 형식을 취한 코너답게 한 주간의 이슈가 던져지면, 유민상 김대성은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대며 황망한 웃음짓기를 반복한다. 두 사람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말하는 법도 없다. 유민상은 “그런 걸 왜 개그맨들에게 물어보냐”며 당혹스러워하면 박영진은 “개그맨이니까 바보흉내나 내겠다?”라고 꼬집는다. ‘풍자’ 없는 시간을 견뎌온 ‘개콘’ 스스로를 향한 고해성사이며 전현직 대통령과 정치인의 이름을 올리거나 패러디조차 할 수 없는 사회상을 함께 담아낸 풍자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풍자 코미디가 즉각적으로 사안을 건드리는 방식을 취했다면, ‘민상토론’은 질문에 주안점을 둬 풍자적인 현실을 담았다. 에둘러 표현하는 접근방식과 당혹스러운 표정이 웃음을 준다”며 “여기에는 ‘개그콘서트’의 자기반성도 내포돼있으며 더불어 시청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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