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은 ‘가욋일’, 취미생활이 ‘본업’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사상 최악의 취업난이 ‘신(新) 투잡족’을 양산하고 있다.
취업난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2030세대들이 직장생활은 ‘가욋일’로 하고, 취미를 본업처럼 즐기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본업을 단순한 ‘돈벌이 수단’ 정도로 여기며 선을 긋는 이들도 생겨나는 실정이다.
생계를 위해 여러가지 일에 뛰어드는 기존의 ‘투잡족’과 달리, 취미를 본업처럼 즐기고 직장생활은 가욋일로 여기는 신투잡족인 셈이다.
왕성한 취미 생활로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일로 충족하기 어려운 자아까지 실현시키겠다는 2030 젊은 직장인들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A(31) 씨도 올해 초부터 체중 감량과 기분 전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단 생각에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취미로 시작한 자전거는 이젠 취미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물질적ㆍ정신적으로 A 씨의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기존에 타고 다니던 수십만원짜리 자전거는 최근 300만원대의 이탈리아 브랜드 자전거로 바꿨고, 일이 빨리 끝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한강 라이딩(riding)’을 나가게 됐다.
주말에는 양평, 춘천 등 장거리 주행을 즐기는 재미에 푹 빠졌다. A 씨, “다음 달에는 아마추어 자전거 대회에 나가보려고 한다”면서 “요즘엔 자전거를 타기 위해 일을 한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취미 생활이 실제 본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잘 다니던 게임회사를 그만둔 B(28ㆍ여) 씨는 최근 유명 ‘뷰티 블로거’로 인생 2막을 즐기고 있다.
당초 회사 생활로 받은 스트레스 등을 식히기 위해 시작한 뷰티 블로그였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게 B 씨의 블로그는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외려 본업보다 더 큰 수익을 가져다 줬다.
그러나 취미와 본업이 전도(顚倒)된 만큼 주변의 반응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취미로 하던 미술을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에 최근 직장을 그만뒀다는 C(27ㆍ여) 씨는 “회사 일이 끝나면 곧바로 포트폴리오 준비를 하러 가야 했기 때문에 회식에 참여할 수 없거나 직장 동료들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을 때가 많았다”면서 “그때마다 동료들이 ‘하루 쯤 빠져도 대학원 붙고 떨어지는 덴 지장 없는 것 아니냐’며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이 취업난, 불황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2030세대의 현실과 맞물려 있다고 설명한다.
또 중ㆍ고등학교 시절 진로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마치지 못한 점도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하면서도, 다만 이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설명이다.
오찬호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일이 힘들수록 직장에 대한 애착보단 새로운 취미를 찾아야겠단 욕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이전 세대에선 찾아보기 힘든 의미있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 연구원은 “취미와 본업이 일치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적은 게 현실”이라며 “외려 취미로 얻은 영감 등을 일터에 적용시키며 자존감과 보람을 찾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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