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충북 청주에 사는 독거 노인 오모(81) 씨는 어린이날이었던 지난 5월 5일 새벽 5시께 한 슈퍼마켓에서 두부 한판(시가 9600원)을 몰래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다행히 오씨는 전과가 없고 평소 파지를 주우며 생계를 근근이 이어가고 있는 처지가 딱하게 여겨져 전과자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과정에는 경찰의 경미범죄 심사위원회가 있었다. 심사위는 오씨가 훔친 두부를 돌려줬고, 슈퍼마켓 주인도 오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 점까지 감안해 형사입건 대신 즉결심판을 결정했다. 오씨는 전과 기록 대신 벌금 5만원을 선고 받았다.

15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올해 들어 3월부터 넉달간 경미범죄 심사위원회를 열어 모두 303건을 심사해, 이중 85%인 257건에 대한 처분을 감경했다. 이 심사위는 경찰서에서 자체 선정한 형사범 등을 대상으로 사실 관계, 피해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그 처분을 감경해 주는 제도다.

죄질이 경미한 범죄자나 ‘장발장’으로 불리는 생계형 범죄자들을 기계적으로 형사입건해 전과자로 만들기보다 이들이 즉결심판이나 훈방을 받고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즉결심판으로 벌금을 선고받더라도 형사입건과 달리 전과기록이 남지 않는다. 현재 17개 지방경찰청별로 경찰서 1곳에 경미범죄 심사위가 운영되고 있다. 위원회에는 경찰관뿐 아니라 변호사 등 외부 인원이 참여한다.

심사위는 전체 심사대상자 303명 가운데 형사입건자 106명 중 98명(93%)의 형사입건을 취소하고 즉결심판을 청구하도록 결정했다. 법원도 경찰의 즉결심판 청구를 한 건도 기각하지 않고 대부분 선고유예(45%)나 벌금(49%)을 선고해 제도의 취지와 타당성을 인정했다고 경찰청 측은 설명했다.

또 즉결심판자 156명 중 85%인 132명이, 통고처분자 41명 중 66%인 27명이 각각 훈방 등으로 처분이 낮춰졌다.

경찰청은 올해 10월까지 17개 경찰서에서 경미범죄 심사위원회를 시범운영한 뒤 운영성과를 분석해 전국의 경찰서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한편 벌금을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서 몸으로 죗값을 치르는 이른바 ‘환형유치자’가 해마다 4만명에 이르는 등 갈수록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벌금을 낼 형편이 못 돼 죄질보다 큰 형벌을 받아야 하는 장발장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환형유치자 규모는 2012년 3만9283명에서 2013년 4만82명, 2014년 4만2871명을 기록했다.

벌금형은 일반적으로 징역·금고 등 자유형보다 죄질이 가벼운 범죄에 선고된다. 최근에는 경범에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너무 가혹하다는 지적에 따라 벌금형의 선고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다. 벌금을 낼 수 있으면 교도소에 가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빈곤계층이 늘어나면서 생계형 범죄 등 가벼운 죄질로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돈을 마련하지 못해 결국 ‘영어의 몸’이 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생계형 범죄를 범한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미성년자 등을 대상으로 최대 300만원을 빌려주는 일명 ‘장발장 은행’도 지난 2월 설립돼 운영 중이다. 하지만 아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제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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