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서병기 선임기자]요즘 KBS 사극 ‘징비록’에서는 각종 개혁안이 나오고 있다. 천민 신분을 양인으로 올려주는 면천법과 토지면적에 따라 공물을 쌀로 바치게 하는 조세법인 작미법, 모든 장정에게 군역을 지게 하는 속오군 편성 등이다. 토지가 넓으면 공물을 더 많이 내야 하고, 전쟁이 나면 양반 자제도 칼을 들고 싸워야 한다.

류성룡(김상중)과 이항복(최철호) 등에 의해 주도되는 이런 제도들은 조선의 혁명적 변화이자 양반들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작업이다. 당연히 양반, 귀족, 토지 가진 자들이 좋아할 리 없다.

여기서 왕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선조(김태우)가 보여주는 입장과 반응은 충분히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이런 개혁안에 대한 선조의 대체적인 반응은 “이거 하면 귀족들이 들고 일어날 거다” “내가 아직은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내가 안된다고 하지않았냐” “명 나라가 가만 안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집기나 소품을 던진다. 작미법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한다. 책임을 안지겠다는 태도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왕, 사사건건 반대하는 기득권층. 이게 개혁에 임하는 조선후기 정치권의 모습이다. 게다가 선조는 조정대신들을 항상 의심하는 ‘의심병’까지 있었다. 선조가 조선의 왕중에서 무능하기로는 인조와 함께 1, 2위를 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을 당하고 선조도 개혁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류성룡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선조는 잘 할 수 있는 기회를놓쳐버렸다. 결정적인 순간에 흐지부지됐다. 외침을 한번 당하고, 앞으로 이순신이 본격 등장하는 정유재란이라는 또 한차례의 외침을 겪지만 바뀌는 게 없다. 선조는 전란이 끝나고 공신 책봉도 의병을 소외시키는 등 합리적이지 못했다.

여기서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지도자의 자세를 류성룡에게서 보고싶다. 그가 내세운 개혁정책이 자신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지 알면서도 소신을 밝히고, 책임을 지고 떠날 줄 아는 정치인이자 공직자이다.

우리가 일본에 병합된 이유는 서세동점(西勢東漸)에 따른 근대화 실패를 주로 거론다. 하지만 조선이 공평한 전세와 군역제도를 빨리 마련하지 못한 탓도 크다. 16~17세기 국난을 바라보는 선조와 류성룡의 극명한 대비는 21세기 한국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정치 뿐만 아니라 메르스 초기 대응에 실패해 ‘메르스 징비록’을 만들어야 하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징비록’의 김상휘 PD는 “류성룡은 자신이 제안한 정책들때문에 욕을 먹고 잘릴 줄 알지만 책임지고 떠난다. 이런 게 공직자의 참된 모습이다”면서 “이런 자세와 모습들을 국난을 극복하는 정치인 류성룡과 군인 이순신에게 볼 수 있는 게 다행이다”고 말했다.

서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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