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상대방이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줄 알았으나, 정작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는 게 그 결말을 통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최근 조선인이 강제동원된 일본 내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강제노동’ 인정을 두고 벌이는 한국과 일본의 줄다리기가 그렇다.
한일 양국은 이달 초 강제노동의 반영 방법과 수준을 놓고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간 끝에 ‘노동을 강요당했다(Forced to work)’라는 표현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우리 정부는 “일제 강점기 한국인들이 자기 의사에 반해 노역했다는 점을 일본 정부가 최초로 공식적으로 언급했다”며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일본은 등재 결정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강제노동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는 의견을 공식화했다. 해당 구문을 일본어로 번역하면 ‘일하게 됐다’ 정도로 해석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외교 수장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뿐만 아니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까지 말 바꾸기에 나서면서 한일간 갈등은 증폭됐다.
강제노동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의 움직임은 집요하리 만치 계속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강제노동이 아니라는 일본의 입장을 재외공관 등을 통해 대외적으로 홍보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일본 집권 자민당 ‘일본의 명예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특명위원회’도 조선인 노동자 징용이 강제노동이 아니라는 주장을 제대로 알리라고 일본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강제노동을 인정한 게 아니다’는 관점에서 후속조치를 이행할 수 있다는 점도 새롭게 제기되는 우려다. 일본은 강제노역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후속조치에 돌입하고, 2017년 12월 1일까지 세계유산센터에 이에 대한 경과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이 한국의 기대를 충족할만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극히 낮아 보인다.
일본의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는 끝났으나 이를 둘러싼 한일간의 신경전은 상당 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현재까지 우리 정부는 국제적 기준과 관행에 따라 처리한 일에 대해 일본이 번복할 여지는 없다며 신중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성실한 준수책임’과 ‘실천 이행’에서 한참 벗어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외교 당국이 취할 ‘신의 한 수’가 궁금하다.
y2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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