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강문규 기자] 해킹 프로그램 도입, 운용 업무를 맡았던 국가정보원 직원 임 모(45) 씨가 지난 18일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되면서 민간인 도청 의혹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국정원은 임 씨 자살 하루 만에 유서를 공개하며 이례적으로 발 빠르게 대응했지만 의혹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임 씨가 숨지기 직전 관련 파일을 삭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일부 온랑니 커뮤니티에서는 ‘시신 바꿔치기’ ‘유서 조작’ 등 억측이 쏟아지고 있다.

국내에서 민간인 핵킹및 사잘이 이뤄졌는지 여부에 대한 실체적 사실관계보다 임씨를 둘러싼 음모론, 또는 사실은폐에 더 관심이 쏟아지는 등 의혹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인 도청 없었다”면서 자살 왜?임 씨는 발견 당시 A4용지 3장 분량의 유서를 남겼으며 경찰은 임씨가 유족에게 남긴 2장을 제외한 1장을 공개했다. 임씨는 유서에서 “내국인,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결백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임 씨의 주장대로 민간인 사찰이 없었다면 굳이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국정원이 원격조종시스템(RCS)을 이용한 해킹프로그램을 이탈리아 업체로부터 구매한 사실이 공개됐지만 국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불법해킹이 아니라면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해킹을 하지 않았다면 소명만 하면 되는 것인데 극단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혹이 증폭되는 배경이다.

▶사라진 직원 방치?…국정원 허술한 대응임 씨는 지난 18일 낮 11시 55분쯤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 한 야산 중턱에서 자신의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임씨가 집을 나선 시각은 새벽 5시, 이후 5시간 넘게 연락이 닿지 않자 임 씨의 부인은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소방서에 “남편을 찾아달라”고 신고했다. 국정원 직원인 임 씨가 단지 5시간 가량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이 서둘러 실종신고를 한 배경을 놓고 의문이 남는다.

또 경찰과 소방당국이 임 씨가 5시간 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가족의 신고를 받자마자 곧바로 위치추적과 함께 수색에 나선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또 임 씨의 시신은 국정원이 아닌 소방당국에 의해 첫 발견됐다. 이 때문에 국정원은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대응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술하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커지는 꼬리자르기 의혹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사건과 관련 “국민사찰 의혹이 더 커졌다”며 “꼬리 자르기로 넘어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새정치연합 유은혜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국정원 직원의 유서는 국정원이 해명해야 할 모든 의혹을 직원 한 개인의 ‘욕심’과 ‘판단’, ‘실수’로 돌리려 하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안타까운 죽음으로 의혹은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 대변인은 유서에 대테러, 대북 공작활동에 대한 자료를 삭제했다고 적힌 데 대해선 “증거 인멸”이라며 “국정원은 삭제된 자료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삭제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온갖 억측, 괴담 난무 각종 의혹들이 증폭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는 온갖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이 발견됐을 때와 비슷한 주장이다. 당시 일부 네티즌은 유병언씨의 시신을 누군가 바꿔치기 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면서 ‘제2의 조희팔 사건’과 비교하기도 했다. 조희팔은 지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다단계 판매업체를 통해 3만여 투자자를 속이고 4조원 이상을 가로채는 등 사기를 저지르고 중국으로 밀항한 바 있다. 이후 경찰은 지난 2012년 5월 조희팔이 중국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해 국내로 유골이 이송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유골은 국내로 이송돼 화장됐고 화장된 유골의 DNA를 감식할 수 없어 조희팔의 유골임을 끝내 확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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