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배우 이하나(33)와의 만남은 특별했다. 이하나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관계에서 예의를 차리는 것이 아닌, 눈 앞에 앉은 사람이 누구든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이었다. 대화 중간중간 ‘맞아요’라는 추임새를 넣거나, 거듭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의 말에 동의를 표시한다. 기자가 답변의 맥락을 정확히 짚어냈다 싶으면, 크게 기뻐하고 고마워했다. 다음엔 무슨 질문이 나올지 궁금하다며, 눈을 크게 뜨고 의자를 당겨 앉았다. 심지어 기자의 고민을 되려 물어보기도 했다.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영화도 몇 편 추천받으려고 했는데 아쉽다’며 따뜻한 인사를 남겼다.
이날 인터뷰의 여운은 오래 남았다. 이하나의 성실하고 사려깊은 태도가 고마웠 던 건, 그녀가 어느 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알기 때문이다. 영화 ‘알투비: 리턴 투 베이스’(2012) 이후 2년여 만에 드라마 ‘고교처세왕’(2014)으로 복귀한 이하나는, 최근 연기 활동에 가속 페달을 밟은 듯 보인다. 올해는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 이어, 최근 단막극 ‘드라마 스페셜-짝퉁패밀리’에도 얼굴을 비췄다. 영화 ‘특종: 량첸살인기’(감독 노덕ㆍ제작 우주필름,뱅가드스튜디오, 이하 ‘특종’)을 통해선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은 아니지만, 이하나는 예정된 촬영 일정을 끝내자마자 인터뷰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종’에서 제 역할이 민폐 캐릭터일 수도 있고, 반갑지 않은 상황들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좋은 작품의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노덕 감독님을 비롯한 좋은 분들이 기회를 주신만큼 그 믿음에도 부응하고 싶었죠. 저희 회사 대표님이 ‘좋은 일이 있건 나쁜 일이 있건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럼 인생이 재미없지 않을까’ 했는데, 다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당시엔 몰랐는데 그 말이 참 편안하더라고요. 앞서 ‘특종’이 있었기 때문에, 단막극에서 좀 더 성숙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최근 이하나는 연기에 대한 욕심과 애정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특종’을 찍을 당시 이하나는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 현장을 오갔다. 드라마 촬영장에선 그녀가 ‘우리나라 최고의 배우’로 꼽는 김혜자와 연기하는 행운이 따랐다. ‘특종’에선 조정석, 김대명과 호흡하는 신이 많았는데,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놨다’ 하는 배우들이었다. 예상한대로 연기하는 법이 없고, 방심하는 찰나 다른 것을 보여줬다. 덕분에 스틸 사진이라도 찍으면서 있고 싶을 만큼 촬영장이 즐거웠다고. 최근 현장에서의 배움과 자극 덕분에, 이하나는 단막극 촬영장에서 “연기를 처음 시작하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고무됐었다.
“드라마 ‘연애시대’로 데뷔했을 땐, 그 게 행복한 건 지도 몰랐어요. 뒤늦게 얼마 큰 행운이었는 지 알게 됐죠. 아직도 ‘연애시대’가 좋았다는 얘기를 들으면, 지금은 마냥 기쁘기보단 책임감을 느껴요. 그 때 능청스럽게 할 수 있었던 건 (한지승) 감독님의 힘이 컸던 것 같아요. 당시엔 드라마 찍는 시스템이 충격이었어요. 스태프들이 밤새 조명기구 들고 있고 하시는데, 제가 긴장된다고 얼굴이 빨개지고 그러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죠. 지금은 (현장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니까, 그 때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해요.” 한 때 이하나는 ‘연기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눈물 연기를 할 때마다 애를 먹었다. 슬픈 상상을 해봐도, 한 곳만 뚫어지게 봐도 좀처럼 눈물이 나지 않았다. 상대 배우와 스태프 모두 그녀의 눈물 한 방울 만을 바라는 상황은, 나오려던 눈물도 쏙 들어갈 만큼 부담스럽고 미안한 것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연기자 선배들에게 ‘어떻게 하면 눈물 연기를 잘 할 수 있느냐’고 묻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하나에게도 자연스럽게 가슴 먹먹한 개인적인 경험이 생겼고, 이제는 현장에서 오히려 눈물을 수습해야 할 만큼 감성이 깊어졌다. 트라우마였던 눈물 연기를 극복하면서 이하나는, “이제는 연기를 정말 하고 싶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최근에 ‘우먼 인 골드’라는 영화를 봤는데, 주인공인 할머니가 정부가 몰수해 간 클림트 그림을 되찾기까지 정말 많은 고생을 하세요. 결국 그림을 되찾고 ‘그래도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하니까요. 이 그림 하나 다시 얻기까지 60년 걸렸네요’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그 말이 제가 올해 얻은 가장 큰 보물인 것 같아요. 나중에 60년 걸려서 돌이키려 하지 말고,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걸로 만들자 싶었어요. 요즘엔 뭐든 오래 보는 습관을 가지려고 해요. ‘오래 보면 보인다’는 말을 들었는데 진짜 그렇더라고요. 내 사진을 계속 들여다보면 ‘내가 이 옷을 왜 입지 말았어야 했을까’, ‘이 옷에 뭘 더해야 나아질까’가 보이거든요. 음악도 과거엔 단순하게 넘어갔는데 지금은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요하게 매달려요. 연기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엔 모니터도 잘 안했는데 ‘단점이 뭘까’ 유심히 보고 그걸 알아낼 때까지 오래 보는 습관을 하고 있어요.”
어느덧 이하나의 연기 인생에서 제 2막이 열린 듯 보인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던 데뷔 초, 연기자로서 좌절했던 시기를 거쳐, 이제는 연기하는 재미를 깨닫고 현장에서 부대끼는 인연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중이다. 인터뷰 말미, 이하나는 “실체를 얘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는 시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제 숙제가 될 것 같다”고 각오를 다졌다. 조금 더딜 수는 있어도 또박또박, 자신 만의 길을 가겠다는 다짐처럼 들렸다.
ham@heraldcorp.com
사진=박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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