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서울 성북동언덕의 고풍스런 미술관에서 만나던 국보와 보물이 대단히 컨템포러리한 공간에 놓였습니다. 우리문화재 지킴이 간송 전형필선생(1906~62)의 컬렉션이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21일부터 관람객을 맞기 시작했습니다. 간송이 1938년 ‘보화각’이란 이름으로 성북동에 미술관을 설립한 이래, 유물의 대대적인 바깥나들이는 처음입니다. 꼭 76년 만의 새 바람입니다.

DDP라는 낯설고 엉뚱한 공간에 간송의 귀중한 서화, 도자기, 훈민정음 해례본 등이 놓이다 보니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미리 전시를 둘러본 관계자 중에는 ‘귀함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갓 쓰고 양복입은 격’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고요.

물론 매년 봄가을 두차례, 성북동 간송미술관을 찾아 춘계및 추계(한국민족미술연구소 주관) 기획전시를 즐겼던 이들이라면 새로운 공간에의 외출이 의아할 수 있겠습니다. 백인산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또한 기자들과의 대담에서 “성북동을 워낙 오래 지켰던 터라 전시하는 사람도 낯설고, 유물도 낯설어하는 것 같다”면서 “간송미술관에서 본 분들은 낯섦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호감으로 봐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고, 귀한 유물도 어떤 그릇에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새롭게 다시 보일 수 있습니다. 동과 서, 과거와 현재, 현실과 비현실, 고전과 첨단이 서로 경계없이 뒤섞이며 조우하는 오늘날, 간송이 수집한 문화재가 꼭 성북동 공간에만 놓이란 법은 없으니까요. 게다가 일년에 두차례, 그것도 보름씩만 일반에 공개되니 그간 갈증이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사립미술관으로선 국내에서 첫째, 둘째로 손꼽히는 ‘막강 컬렉션’을 자랑하면서도 그 귀한 유산을 향유할 기회가 너무 적었습니다. 특별히 허가를 득한 사람을 제외하곤, 유물을 직접 살펴볼 기회가 없어 문화재 연구자들 또한 많이 아쉬웠던 터고요.

간송미술관의 춘계및 추계 전시회 때, 성북동의 낡고 비좁은 전시실을 찾았다가 몰려드는 관람객들 때문에 ‘앞사람 뒷꼭지만 보다 왔다’고 했던 이들에겐 너른 공간에서 만나는 유물이 반갑고, 고맙기 그지 없습니다. 성북동 미술관에서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와 쏠림 때문에 행여 유물이 손상되지 않을까, 유리장이 깨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던 이들 또한 매한가지고요.

앞으론 훨씬 더 쾌적하고 넓어진 공간에서 여유롭게 우리 선조들의 빼어난 예술혼과 미감을 음미할 수 있게 됐다며 좋아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DDP에는 개관 첫날부터 한국인은 물론, 중국인 일본인 미국인 유럽인들이 잇따라 찾고 있어 우리 겨레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 세계인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DDP 배움터 2층의 디자인박물관에서 ‘간송문화(澗松文華)-문화로 나라를 지키다’라는 제목으로 21일 막을 올린 간송문화 전에는 간송 전형필선생의 삶과 문화재 수집과정을 살필 수 있는 유물 100여점이 나왔습니다. 수집과정이 확실하게 알려진 유물이 집중적으로 소개된 것이 특징으로, ‘훈민정음 해례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청자연적’ 등 국보급 유물 10여점이 포함됐습니다.

개관 전날(20일) DDP 간송문화 전 현장을 찾은 간송 전형필의 차남 전영우(74) 간송미술관장은 “우리로서도 새로운 도전”이라며 “선친께서 최고의 문화유물을 수집했으니 우리 가족이 무척 부자일 거라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 반대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어마어마한 유물과 함께, 부채도 엄청 많이 남기셨다. 지금까지 내핍에 내핍을 거듭하면서 선친의 수집품을 정리하고, 연구하느라 전시관이며 연구소를 제대로 개축할 여력이 없었다. 물론 정부및 각계에서 지원을 제의했지만 돈 받으면 코 꿸 것같아 모두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간송미술관이 지난해를 기점으로 엄청난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새롭게 설립됐고, 문호를 적극적으로 개방하기 시작했습니다. DDP라는, 어쩌면 대척점에 선 듯한 3차원의 초현대식 비정형 건축물에 전시실을 꾸민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예전 같으면 100여점에 달하는 유물의 외출은 상상조차 못했던 일입니다. 간송은 국내외 유명 미술관의 작품대여 요청에도 대부분 ‘불가‘를 외쳐왔던 곳이니까요. 또 그 흔한 인터넷 웹사이트 하나 없었지요. 그런데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손잡고 주요 컬렉션을 선보이는 온라인 전시관도 근래에 만들었습니다.

다분히 폐쇄적이고 고루했던 미술관의 색깔을 대대적으로 바꾸고 있는 이같은 실험이 결실을 맺기위해선 보다 많은 관람객의 호응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DDP 개관프로그램의 골갱이에 해당되는 ‘간송문화’전을 찾아 즐기는 이들이 성북동에서처럼 긴 줄을 만든다면 일단 성공이겠지요. 재단측은 71년 만에 컬렉션이 본격적으로 바깥나들이를 했으니 더 많은 대중이 간송의 문화재 애호정신과 그가 수집한 빼어난 문화유산을 음미했으면 합니다. 특히 젊은 층과 청소년들이 많이 관람해 미래 우리 인재들의 예술적 안목과 창의력이 길러졌으면 하고 있습니다.

이번 간송문화 전에는 일반에 최초로 공개되는 ‘훈민정음’ 해례본(세종을 보필해 한글을 만들었던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례를 상세히 설명한 글이 담긴 책)을 비롯해, 고려청자를 세계적인 명품의 반열로 올려놓은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제 68호), 겸재 정선의 대표작인 ’금강내산‘ 등이 수록된 ‘해악전신첩’ 등이 출품됐습니다.

청자상감매병은 어깨는 대단히 넓고 탄탄한 반면, 허리 부분으로 내려가며 더없이 잘록해 ’유려한 S자 곡선‘을 띄고 있는 고려식 매병입니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그 형태며 빛깔은 가히 일품이지요. 상감기법으로 운학문을 섬세하게 새겨넣은 솜씨 또한 세계 최고이고요.

또 현재 심사정의 ‘촉잔도권’, 청화및 철화기법 등이 백자 안에서 절묘하게 어우러진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 제294호)도 놓쳐선 안될 작품입니다. 간송이 1936년 일본에서 국제변호사로 활동하던 고려청자 수집가 존 개스비(영국)를 직접 찾아가 사들인 ‘청자기린유개향로’(국호 제65호),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국보 제270호)도 만날 수 있습니다. 현재 심사정의 ‘촉잔도권’은 가로 8m18㎝에 달하는 전체 작품이 한번에 펼쳐서 선보여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인간 삶의 여정을 드라마틱하게 다룬 걸작을 보다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DDP에서의 간송문화 전은 1, 2부로 나뉘어 열립니다. 1부 전시는 오는 6월15일까지이며. 2부 전시는 7월 2일부터 9월28일까지로 잡혀 있습니다. 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에 수록된 풍속화 30점은 1부에 10점이 먼저 전시되며, 10점 단위로 교체해 선보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후에도 다양한 기획전을 DDP에서 진행하겠다고 재단측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동안 성북동에서의 간송 전시가 무료였던 것과는 달리, DDP에서의 전시는 관람료(성인 8000원, 학생단체 4000원)를 받습니다. 자체 공간이 아닌 외부공간에서 유물을 안전하게 보존하며 대규모 전시를 열다 보니 비용지출이 만만찮아 일정수준의 관람료를 받게 됐다고 재단측은 설명했습니다. 한편 자세한 유물 해설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길 원하는 관객을 위해 주최측은 평일 4회 도슨트 프로그램도 시행합니다.

불시착한 외계비행선처럼 보이는 DDP의 거대한 첨단공간에서도, 간송이 신명을 다해 수집한 우리 문화유산은 전혀 밀리지않을 정도로 짱짱합니다. 게다가 우아한 예술적 품격에선 가히 비교가 안되니 이제 차분히 즐길 일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