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 동부가 기다리는 R은…

‘대마불사(大馬不死)’가 ‘대마역사(大馬亦死)’로 바뀐 지는 오래다. 이제 ‘대기업이니 살려주겠지’라며 팔짱 끼는 곳은 없다. 지난해 동양, STX그룹이 무너지며 분위기는 더 엄중해졌다. 채권단은 강도 높은 재무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총수까지 직접 불러 재촉한다. 채권단의 간섭이 지나치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올 지경이다. 현대, 동부, 한진, 금호아시아나 등 채권단의 도움을 받은 대기업들이 예전의 자생력을 ‘회복(retrieval)’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이유다.

▶‘알토란’도 아낌없이=현대그룹은 지난해 말 약속한 3조3000억원의 자구계획을 지키기 위해 2월 현대상선의 액화천연가스(LNG) 운송사업부를 1조100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2012년 기준 매출은 2800억원에 불과하지만 매각가격이 말해주듯 장기적인 수요가 보장돼 있어 수익성이 아주 높은 사업부문이다. 현대그룹은 매년 200억원 이상의 흑자를 기록하는 현대로지스틱스의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당초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었지만 회사 측은 최근 지분 매각도 고려하며 국내 대기업 및 사모펀드사와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로지스틱스는 현대택배를 보유한 국내 2위의 물류회사다. 현대상선의 알짜 사업에 이어 알짜 계열사까지 내놓는 셈이다. ‘돈 되는 사업을 다 팔면 앞으로는 뭘 먹고 사나’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아쉽지만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동부그룹도 지난해 11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3조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마련했다. 당시 동양그룹이 무너지고 시장에서 ‘동부그룹도 위험하다’는 루머가 파다했다. 김준기 회장은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고 채권단의 신뢰를 얻기 위해 동부하이텍, 동부제철 인천공장, 동부메탈, 동부당진항만 등 알짜사업을 무더기로 내놓았다.

▶‘경영권’도 내놓는다=한진해운은 지난해 부채비율이 1444.7%까지 치솟았다. 영구채 발행, 금융권 지원 등을 추진했지만 채권단은 강도 높은 자구안이 먼저라며 압박했다.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은 결국 지난해 말 시숙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SOS를 보냈고, 가까스로 긴급지원을 받았다. 한진해운 경영권은 이로써 한진그룹으로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한진그룹의 상황도 녹록지는 않다. 이미 2009년 11월부터 6년째 채권단과의 재무구조개선 약정이 이어지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은 지난해 17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5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부채비율도 730%대로 상승했다. 한진해운을 품게 되면서 재무구조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한편으로는 한진해운을 도우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S-Oil 지분매각 등 자구노력을 해야 하는 처지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인수하다 빚더미에 짓눌린 금호아시아나그룹도 자생력 회복을 위해 경영권을 내려놓은 경우다. 현재 박삼구 회장이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지분에 기반한 지배력이 아니다. 채권단이 잠시 맡긴 것뿐이다. 정상화를 못 시키면 영영 경영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서 더 필사적이다. 박 회장은 올해를 제2 창업의 해로 정하고 워크아웃을 졸업하자며 이를 악물고 있다.

박수진ㆍ서상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