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가 되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당을 보지 말고 사람을 보라.’ 특정 지역에선 어떤 정당인지만 따지지 그 인물이 어떠한지는 아예 묻지 않는다. 때문에 당보다 사람이라는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지지하는 정당이 아니라고 해서 좋은 사람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사정을 감안하면, 유권자로서도 이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을 수만은 없다. 그런데 이 말이 특수한 사정을 전제로 하지 않고 어느 경우에나 적용되는 보편명제로 이해해도 될까?
정치행위를 하는 주체의 기본 단위는 인물과 정당이다. 인물 중심의 정치라고 해서 정당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선거가 주로 인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소선거구ㆍ단순다수제는 인물 중심의 선거를 지향한다. 반대로 비례대표제는 정당중심의 선거를 지향한다. 투표자는 정당에 투표할 뿐 개인에게 표를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른 측면에서 볼 수도 있다. 인물 중심의 정치는 사람에 따라 당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경우를 말한다. 정치의 ‘사인화(私人化)’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과거의 우리나라처럼 지역 맹주라고 해서 튼튼한 지역기반을 가진 큰 정치인이 있으면 이들에 의해 정당이 수시로 만들어지곤 한다. 이른바 ‘3김(三金)’이라 불린 분들이 대표적이다. 정당중심의 정치는 아무리 강한 기반을 가졌다고 해도 정당 틀 안에서 운신하는 경우다. 누구라도 당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정치적으로 거의 생존이 불가능하다.
제러미 리프킨이 ‘어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안 드림’을 대비시킨 바 있는데, 이에 빗대자면 인물중심의 정치는 ‘어메리칸 스타일’이고, 정당중심의 정치는 ‘유러피안 스타일’이다. 그런데 보통사람들이 얼마나 살기 편하냐 하는 기준으로 평가하면 유럽이 미국보다는 더 나은 사회다. 그래서 리프킨도 ‘어메리칸 드림’의 시대는 가고, 이제는 ‘유러피안 드림’의 시대라고 말한다. 결국, 정당중심의 정치가 인물중심의 정치보다 결과적으로는 더 나은 성과를 만들어 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당보다 인물이란 명제는 틀렸다. 인물보다는 당이라고 하는 게 옳다. 물론 이때의 당은 ‘좋은 정당’이라는 걸 전제로 하는 말이다. 좋은 정당은 다수의 삶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절한 정책대안으로 그들이 좋은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책임지는 정당이다. 따라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좋은 정당을 중심으로 정치가 펼쳐지는 게 보통의 사람들에게 더 유익하다.’
우리 정치를 두고 ‘후지다’는 평가를 내리는 이유는 정당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 등을 잣대로 평가할 때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비해 훨씬 강한 정당이다. 그러나 강하다고 해서 좋은 정당인 것은 아니다. 선진국의 주요 정당들과 비교하면 새누리당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꿈이 없고, 강자의 완력에 굴종하는 구태도 문제다. 예컨대, 복지국가를 건설하는데 사회민주당이 기여한 바는 절대적이다. 복지국가는 사민당의 작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에 비해 새누리당이 산업화와 민주화에 기여한 몫은 그리 크지 않다.
사회 전체를 운영하는 시스템이 정치다. 따라서 정치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국정을 잘 이끌기 어렵다. 따라서 좋은 정당이라면 시대마다 요구되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제시하는 한편, 신망과 리더십을 갖춘 인물을 끊임없이 길러내야 한다.
선진국의 예에서 보듯, 민주사회에서 좋은 지도자는 주로 정당에서 길러지고, 배출된다. 정당 밖에서 등장한 지도자는 정치를 모르고, 정치문법을 이해하지 못해 금방 한계를 노출한다. 지금 야권이 선거마다 지고 부진한 이유도 역시 여기에 있다. 허약한 정당,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반복되는 지도자ㆍ후보의 외부 영입, 뒤이은 패배와 혼란, 이것이 바로 야당의 현주소다. 무릇 좋은 정치는 좋은 정당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깨달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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