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원혁 기자] “누나, 오늘 서울 올라가는데요”, “그럼 서울역으로 마중 나갈테니, 거기서 보자”

“애비야, 5시 도착이다”, “그럼 서울역 기차 내리면 나오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서울역 하면 떠오르는 것, 추억과 낭만이다.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곳, 서울역은 우리에게 과거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선물한다. 서울역 뿐만은 아니다. 촌놈이 서울역사를 빠져나오면 맨먼저 등 뒤로 보이는 거대한 고가(높이 17미터).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그 모습에선 위압감도 느꼈지만, 바로 ‘이게 서울이구나’ 하는 경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서울역 고가 역시 우리 추억에선 빠질 수 없는 대상이다.

13일 0시 서울역고가가 폐쇄된다. 서울시는 차량 통행 통제에 따른 시민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교통체계 개선, 대중교통 확대, 우회경로 확보, 현장 안내인력 배치’ 등을 추진한다. 사진은 폐쇄를 앞둔 11일 오전 서울역고가 모습.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13일 0시 서울역고가가 폐쇄된다. 서울시는 차량 통행 통제에 따른 시민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교통체계 개선, 대중교통 확대, 우회경로 확보, 현장 안내인력 배치’ 등을 추진한다. 사진은 폐쇄를 앞둔 11일 오전 서울역고가 모습.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이런 서울역 고가가 13일 0시 폐쇄된다. 공원으로 탈바꿈된다. 시민들에겐 ‘추억의 다리’에서 ‘서민의 다리’로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서울역 고가는 ‘고가’ 그 자체가 아니다. 서울역 고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애환이 숨어있다. 실패와 성공의 스토리도 서울역 고가는 가슴에 품고 있다.

지난 1970년 생긴 서울역 고가는 만리동 고개 봉제공장에서 생산되던 제품이 단숨에 줄달음치며 남대문시장으로 보내지던 ‘생산의 다리’였고, 지방에서 올라온 상인들이 성공을 꿈꾸며 달렸던 ‘꿈과 희망의 다리’였다.

서울역 고가는 현재 45살이다. 서울역 고가는 국내 최대역사인 서울역을 끼고 퇴계로, 만리재로, 청파로를 직통으로 이어주는 총 길이 1150m의 고가 차도로 1970년 8월15일 개통했다. 준공식에는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가 참석해 국가 차원의 큰 관심을 증명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고가를 걸은 후 지난해 10월 시민걷기 행사가 열리기까지 한 번도 보행로로 개방된 적이 없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만큼 서울역 고가가 공원으로 되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는 효과도 있다는 의미다.

서울역 고가는 경제발전의 상징이었다. 고가도로는 차량이 신호대기 없이 신속히 교차로를 이동하게 해주는 도로의 혁명으로 불리며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말까지 집중적으로 설치됐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산업화가 한창 진행 중인 시대라 차량위주의 교통정책이 우선시 됐던 것이다.

하지만 한때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던 고가도로 역시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고가도로 시설의 노후화가 진행됐고 유지보수에 많은 비용이 들면서 철거논의가 시작됐다. 서울역 고가 역시 이같은 논의의 정중앙에 위치해왔다.

유지 보수 비용의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는 고가도로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크게 작용한 것도 서울역 고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배경이다. 고가도로를 이용한 빠른 이동과 시간 단축이라는 장점보다는 고가도로로 인해 교차로의 상권발전이 저해되고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단점이 더 부각되면서 고가도로의 철거에는 일부 시민들의 지지도 얻은것이 사실이다.

청파동에 사는 김미정(63ㆍ가명) 씨는 “서울역 고가가 주는 아련한 추억은 내게 소중하다”며 “그렇지만 오랜 시간 우리에게 익숙했고 친숙했던 도시의 도로구조물이 어느덧 흉물스러운 구조물로 인식되면서 서울역 고가가 없어지고, 대신 공원이 된다는 것에 대해 복잡한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경제성장과 소득수준, 삶의 질 개선 역시 서울역 고가 퇴장론을 앞당겼다. 서울역 고가는 건설된 지 4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면서 시설이 노후화했고 1998년부터는 총중량 13t이 넘는 차량통행을 제한했고 2008년에는 시내버스 12개 노선과 공항버스 1개 노선의 통행도 금지됐다. 지금은 재난위험등급 최하점인 D등급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상판 탈락 현상 등 안전사고 위험이 감지된다.

서울시가 박원순 시장을 필두로 이른바 ‘서울역 7017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다만 서울역 고가는 서울시민이나 남대문 시장 상인 만의 문제는 아니다. 45살의 서울역 고가에 ‘제2 인생’을 부여하는 작업은 수많은 이들의 아련한 추억과 슬픔, 아픔과 땀이 결부돼 있기에 전국민의 관심사일 수 밖에 없다.

서울역 고가는 45년만에 고가도로 임무를 마치고 쓸쓸히, 하지만 자긍심을 갖고 퇴장한다. 그럼 이후는? 서울역 고가를 시민에 여전히 사랑을 받는 대상, 자주 찾는 웰빙 공원, 헬스 공원으로 만들기 위해선 단순한 추억이 아닌 실용적 감성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choig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