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성’이면 ‘정음’이라고 했다. 2015년 업계의 유행어다. 두 사람은 올 한 해 드라마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은 얼굴이다.
지성 황정음은 올초부터 홈런을 쳤다. 사실 이 드라마는 기대치가 낮았다. 캐스팅 당시부터 난항이었다. ‘해를 품은 달’(MBC)의 진수완 작가가 집필을 맡았고, 제2의 ‘해품달’ 신화를 꿈 꾸며 중국 절강화책 미디어로부터 15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아시아 시장을 겨냥했으니 남자 한류스타가 필요했다. 대본이 여러 스타의 손을 거쳤다. 드라마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모두가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뒷말이 나왔다.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은 무려 1인 7역을 소화해야 했다. 자칫 쌓아온 커리어에 흠집이 날 수 있을 만큼 연기 내공이 필요한 드라마였다.
20대 톱배우들의 손을 탔으나, 드라마는 방송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지성과 만났다. 여주인공은 황정음이었다. 공교롭게도 동시간대 같은 소재를 다룬 톱스타 현빈과 한지민의 복귀작 ‘하이드 지킬, 나’(SBS)가 맞붙을 예정이었다. 앞서 시작했으나 대진운도 좋지 않았던 셈이다.
뚜껑을 열자 전세가 역전됐다. ‘비밀’(KBS2ㆍ2013)로 동시간대 경쟁작이었던 김은숙 작가와 이민호 박신혜 김우빈 주연의 ‘상속자들’을 밀어낸 ‘역전의 용사들’다웠다.
일곱 인격을 소화하는 지성에겐 “출연료도 일곱 명의 몫을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성의 훨훨 나는 연기력이 만든 일곱 인격은 눈빛, 행동, 말투가 ‘날 것’처럼 살아 움직였다. 남자배우 최초로 여성 화장품 ‘완판남’이 됐다. 다섯 번째 인격이었던 여고생 요나가 즐겨발랐던 틴트다. 이른바 ‘요나 틴트’였다. 지성은 배우 인생 최초로 받게된 ‘틴트 완판남’ 수식어에 “어이없다”며 폭소를 터뜨렸다.
드라마는 매회 지성의 ‘원맨쇼’였고, 올 3월 종영했지만 지성의 연기력은 방송가에 두고 두고 회자됐다. 지성은 평범하고 가벼우리라 예상했던 로맨틱코미디에 깊이를 불어넣었다. 지성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애초부터 스타가 되기 위한 창구는 아니었다. 직업인으로의 사명이 베어있었다. “모두가 힘들고 지칠 때에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요. 픽션의 세계에서 대리만족을 드리고 응원하는 것이 배우로서 힘을 드리는 가장 큰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라마가 단순히 시청자들을 끌기 위한 재미를 주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을 가지고 만들어야 하는게 아닐까요.” 지성의 연기지론이다. 상반기를 화려하게 장식한 ‘킬미, 힐미’로 지성은 명실상부 2015년 브라운관 최고의 남자배우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연기대상의 유력 후보자로 올라있다.
날개 돋힌 지성의 곁에서 황정음은 철저하게 조력자가 됐다.
“저 보세요. 욕심 많게 생겼잖아요.” 스스로 그렇게 욕심이 많다는데, 이 드라마에서 만큼은 욕심을 버렸다. 드라마 시작 전부터 “지성 오빠를 빛나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황정음의 연기지론이다. 이른바 ‘사이즈론’. “한 작품이 잘 되기 위해선 캐릭터마다 각자의 사이즈가 있어요. ‘킬미 힐미’는 제가 욕심을 부리면 망가지는 드라마였어요.”
일곱 명의 지성을 상대하는 황정음도 만만치는 않았다. 저마다의 인격에 맞춰 서로 다른 대응방식을 보여준 황정음 식 ‘로코(로맨틱코미디)’가 빛을 발했다.
지성과 찰떡 궁합을 자랑했던 황정음은 하반기 ‘그녀는 예뻤다’(MBC)로 다시 안방을 찾았다.
2005년 ‘루루공주’로 데뷔, 한 때는 “독보적인 발연기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황정음은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을 만나며 재평가받았다. 시트콤에서의 황정음은 물 만난 고기였다. 발랄했고, 사랑스러웠고, 능청스러웠다. ‘시트콤용 연기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자, 황정음은 변신을 시도했다. 진지한 작품만 연이어 골랐다. 지난 몇 해 사이 황정음은 ‘눈물의 여왕’이었다. ‘비밀’에 이어 ‘끝없는 사랑’(SBSㆍ2014)을 통해 한 여자의 굴곡진 삶을 그린 것이 그것의 완성이었다. 30부작 마라톤을 마친 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황정음은 차기작으로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킬미 힐미’로 몸을 푼 황정음은 ‘그녀는 예뻤다’로 훨훨 날았다. 이번엔 황정음의 ‘원맨쇼’였다.
주근깨 투성이, 구제불능 곱슬머리의 못 생긴 여주인공으로 변신했다. 드라마의 절반에 달하는 분량 내내 황정음은 못생겼다.
‘로코’ 붐이 꺾인 안방에서 드라마는 기대 이상의 사랑을 받았다. 가을야구가 한창인 때에 결방되자, 시청자 게시판과 온라인은 마비됐다. 고작 결방기사 하나에 1만2000여 개에 달하는 댓글이 달렸다.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였다.
이 드라마의 성공은 ‘팔 할’이 황정음이었다. 세상의 기준에선 못생겼다고 불리는 여자, 가세가 기울어 먹고 살기 급급했고, 그 때문에 외모는 물론 스펙도 돌볼 여력이 없었던 여주인공, 그런 여주인공을 알아보지 못하는 남자 주인공의 숨은 찾사랑 찾기다. 뻔한 로맨틱코미디는 주연배우(황정음 박서준 최시원 고준희)들의 높은 궁합지수에 시청자들의 죽어가던 연애세포를 되살려놨다.
‘그녀는 예뻤다’까지 마치자, ‘믿고 보는 황정음’이라는 수사가 붙었다. 황정음이 연기력 논란을 극복하는 과정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연기를 좀 잘 할 땐 내가 되게 잘난 사람 같고, 연기를 못 하면 병신 같고. 그런 과정을 겪어왔어요. 로봇연기를 할 때부터 지금까지요. ‘그녀는 예뻤다’ 회식을 하는데 MBC 사장님이 오셨더라고요. 방송국 사장님은 원래 이런 데 잘 안 오신다면서요. 국장님도 연기 잘 한다고 칭찬해주시고요. 옛날 같았으면 ‘너 연기를 왜 그렇게 하냐’고 했을텐데…. 전 지금의 제가 가장 예쁜 것 같아요. 얼굴이 아니라 상황이요. 열심히 연기를 해왔고, 좋은 작품 만나서 행복한 하루하루 보내고 있어요. 지성 오빠와 함께 연기대상 후보라는 것만으로 감사해요. 받게되면 영광이죠. 배우로서 정점을 찍는거니까. 하지만 기대는 안해요. 서른 다섯 안에 받는 게 꿈이었는데 아직 3년 남았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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