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이 대세였다. 그러나 이제 힐링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책은 힐링 열풍의 대표적 작품이다.

웰빙의 자리를 힐링이 대신하고 있다. 아프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왜 아플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가져본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했다. 5공의 매캐한 기억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로 사라졌다.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의 탄생으로 민주화라는 말은 기억 저편에 자리잡았다. 그러나 생존의 문제가 산업화 시절보다 오히려 악화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개인의 안락과 성공에 올인했다. 사치스러운 목표였다. 생존위기에서 말이다.

무한경쟁 원리는 한국인의 정신건강을 황폐화시켰다. 몸의 상처보다 더 아픈 건 마음의 상처다. 이게 트라우마다. 게다가 한국인은 다른 나라 국민에게서 찾을 수 없는 집단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제 식민지와 미 군정, 한국전쟁, 군부독재에서 국가폭력이 그랬고, 압축성장에서 나만 소외되는 좌절 역시 그렇다. 최근의 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나,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세월호 참사의 끊나지 않은 갈등도 집단 트라우마의 대표적 사례다.

광복 후 극심한 좌우 대결은 지금의 보혁갈등으로 재현되는 모습이다. 반공주의자들은 아직도 광복과 한국전쟁 당시 기억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생존해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은 한일 합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의 상처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외면당했다. 하나 둘 먼저 가시는 할머니들에게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미안함이었다. 할머니들은 앞으로 계속 시위에 나설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단원고의 ‘기억교실’은 트라우마의 중심에 서있다. 최근 학대 아동들이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한국사회는 새로운 트라우마에 노출됐다. 요즘 젊은이들은 공부기계에서 N포 세대가 됐다. 청년층은 공포 트라우마에 휩싸였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과의 단절은 쉽지 않다. 많은 시간과 인내, 돈이 필요하다. 완쾌될 대상이 아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래도 해야 한다. 그래서 공동체가 중요하다. 단순히 심리학이나 의학적 측면의 증상 완화에 국한하지 말자. 피해자들이 일상적인 삶을 회복하는 과정을 점검하고 도와야 한다.

미국은 9ㆍ11 테러 이후 국립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센터를 설립해 PTSD 예방과 이해, 치료에 관한 교육ㆍ연구 등을 수행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11년 3ㆍ11 동일본 대지진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 등 3개 지역을 위해 심리치료센터 14곳을 설치했다.

역사적 트라우마, 재난 트라우마 모두 우리가 극복해야 한다. 국가가, 사회가 이들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발짝도 나갈 수 없다. 트라우마가 대물림될 뿐이다. 그러면 갈등이 또다시 재현된다. 상처입은 곳으로 ‘치유여행’을 떠날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