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 회식은 한국 직장인의 ‘숙명’과도 같다. 대부분 직장이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기면서 조직의 단합을 추구한다는 목표 아래 ‘술집’으로 모이는 문화를 갖고 있다.
최근 다양한 문화생활로 회식 트렌드가 바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회식에 술이 빠지면 섭섭하다”는 게 우리 사회 직장 상사들의 생각이다. 그 생각에 맞춰줘야 하는 사원, 대리급 직장인들은 오늘도 밤새 마신 술에 쓰라린 속을 부여잡고 출근해야 한다.
직장인들이 회식을 꺼리는 제일 큰 이유는 ‘잦은 술자리’와 ‘술을 강요하는 상사’다. 잡코리아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평균 주 2회 회식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65.6%는 회식이 밤 9시 이후에 끝난다고 밝혀 식사자리로만 끝나는 회식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기업 그룹 지주사에 다니는 박모(32)씨는 “팀장님이 술을 너무 좋아해서 4차는 기본이고 보통 새벽 2~3시 돼야 집에 갈 수 있다”며 “자리선정에 실패해서 팀장님 앞에 앉으면 그날은 죽었다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정모(31ㆍ여)씨는 “업무가 새벽 5시에 끝난 적이 있는데 그때도 회식을 한 적이 있었다“며 “일은 무지막지하게 시키고 나서 꼭 회식으로 무마시키려는 게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회식 문화는 외국계 회사도 예외는 아니다. 박씨의 경우 이직 전에 외국계 금융사를 다녔는데 동료 중 남성 비율이 높다보니 군대식으로 무조건 주는대로 먹어야 하고 3차는 단란주점을 가는 경우도 많았다. 박씨는 “회식을 꼭 목요일에 하는데 높은 사람들은 금요일에 업무는 대충 하다 집에 가거나 잠을 자는 경우가 많지만 말단 직원들은 숙취로 괴로워하며 업무를 봐야 한다”며 “일을 위해 술을 마시는지 술을 마시려고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직장인들은 술을 잘 먹는 것을 직장인의 덕목으로 보거나 상사와 회사에 대한 ‘충성도’로 간주하는 상사를 가장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오모(31ㆍ여)씨는 최근 월말 결산으로 며칠 야근하다 겨우 끝내고 모처럼 금요일 밤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상사가 긴급 회의하자 해 다시 출근한 적이 있었다. 그 상사는 회의를 조금 하더니 술을 마시러 가자고 직원들을 데리고 술집으로 향했다.
오씨는 “알고 보니 참여하기 싫은 회식 분위기를 일부러 만들어 놓고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시험한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날 체질 상 술을 한 모금도 하지 못하는 남자 직원에게 맥주를 마실 것을 강요하며 ‘너의 충성심을 보여줘’라고 말하는 상사의 모습에 진저리를 쳤다”고 말했다.
회식을 고집하는 직장 상사들은 “회식을 통해 조직 간 의사소통도 할 수 있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다”며 회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 공공기관의 팀장인 유모(53ㆍ여)씨는 “나이든 사람들은 일을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감정이 안좋아질 수도 있는데 회식자리를 통해서 서로 스트레스도 풀고 서운했던 것 얘기도 해주면 분위기가 좋아지는 것 아니냐”며 회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같은 조직문화가 오히려 구성원 간의 진정한 소통을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중독연구재단 카프성모병원의 하종은 알코올센터장은 “기본적으로 술은 중추신경을 억제하는 물질”이라며 “이미 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실한 의사소통이나 진정한 솔루션을 찾아가는데는 오히려 장애가 된다”고 지적했다.
서우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자신은 회식 자리에서 굉장히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고 구성원들이 회식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다 털어놓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직장 상사들의 착각”이라며 “회식 같은 구시대적 조직문화를 바꿔야 조직의 통합과 성과에 반영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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