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슈퍼리치팀=윤현종 기자ㆍ김세리 인턴기자] 벨라루스(Belraus). 러시아의 서쪽에 자리잡은 작은 나라다. 여행을 좋아하거나 세계지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나라이름인지 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그다지 유명한 국가는 아니다.
서쪽으로는 폴란드와,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벨라루스는 1991년 구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탄생한 독립 25주년을 맞은 아직은 젊은 국가다. 백색의상을 유독 좋아하는 민족성 탓에 과거 ‘백(白)러시아’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느닷없이 벨라루스 이야기를 꺼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서울 인구에도 못미치는 인구 900만명의 소국에 최근 역대 최초로 공식 자산 10억달러이상을 보유한 ‘빌리어네어’ 기업가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벨라루스의 젊은 기업가 빅터 키슬리(Victor Kislyi)다.
▶ ‘백색나라’의 젊은 부자 …게임 ‘월드오브탱크(World of Tanks)’로 억만장자 반열= 최근 블룸버그는 빌리어네어 리스트를 업데이트하면서, 키슬리를 포함시켰다. 공식적으로 드러난 그의 자산이 10억달러를 넘어섰다는 판단에서다.
올해 겨우 39세인 키슬리를 1조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한 거부로 만든건 그의 회사다. 키슬리는 게임회사 워게이밍(Wargaming)사의 창업자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사명이 낯설겠지만, 워게이밍의 작품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게이머들이 많다. 세계적인 히트작인 MMO(대규모 다중접속) 액션게임인 월드오브탱크(WoT)가 바로 워게이밍사의 작품이다.
탱크의 시점으로 전장을 누비면서 전투를 치르는 게임인 월드오브탱크는 세계적으로 팬이 아주 많은 작품이다. 2013년에는 한 서버에서 동시접속자 수 19만명이 넘어 기네스북에 이름이 올랐고, 콘솔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4 버전 출시때는 출시 한 달 만에 다운로드 200만회를 기록해 업계를 깜짝 놀래키기도 했다.
지난해의 경우 5억9000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면서 전세계 PC게임 부분에서 ‘리그오브레전드’, ‘던전파이터’,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등에 이어 4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덕분에 워게이밍사의 기업가치는 현재 15억 달러, 우리돈 1조8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평가받는다. 키슬리는 바로 워게이밍사의 지분 54%를 가지고 있다. 그의 아버지가 보유한 25.5%의 회사주식 역시 사살상 키슬리의 지분이나 마찬가지다.
▶ 꼼꼼하게 구현한 전장과 박진감이 성공비결 = 월드오브탱크가 세계적인 히트작이 되어 롱런하고 있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세계 1ㆍ2차대전, 6.25 전쟁 등 역사상 실제로 벌어졌던 전쟁의 무대를 게임 속으로 잘 끌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인물과 전투, 당시의 전장(戰場) 상황 등을 상세하게 조사해 그 어떤 게임보다도 완성도 높은 스토리보드를 구축했다.
게임속에 구현된 실제 전쟁지역의 지형은 게임의 재미를 배가 시킨다는 평이다. 무거운 전차들이 지형의 영향을 받는 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국가별로 400개의 장갑차를 사실감있게 재현한 것도 포인트다.
그렇게 구축된 탱크전의 세계가 밀리터리 마니아는 물론 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나 전투게임을 좋아하는 남자 유저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게임 전문가들은 “월드오브탱크는 유저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그들만의 독특한 하위문화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주기적으로 탱크와 장갑차, 전장이 업데이트 되는 데다가, 여러 유저들과 동시에 팀을 이뤄 승부를 겨루는 방식이 때문에 게임의 인기가 오래 지속 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 실험광 아버지ㆍ벨라루스가 키워낸 전쟁게임 = 키슬리가 살아온 궤적을 보면, 그가 ‘탱크로 전쟁하는 게임’으로 세계 시장을 휩쓸 수 있었던 이유가 몇가지 발견된다.
먼저 어린 시절의 경험이다. 그는 공학도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항상 실험실에 처박혀 실험에 몰두하는 아버지 때문에, 어린 키슬리는 컴퓨터와 일찍 가까워질 수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갔던 실험실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한켠에 있던 컴퓨터를 일찍부터 만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당시 동구권에서는 드물게 어린 나이부터 많은 게임을 해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접한 게임은 주인이 되어 제국을 거느리는 ‘I was king’이었다. 그는 “텍스트로 명령을 입력하는 방식의 게임이었다. 하지만 내 컴퓨터 실력은 늘 내 맘 같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부모님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초 책을 사다주셨다. 책을 보면서 노트에 펜으로 그림을 그리며 직접 게임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그게 내 첫 게임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이같은 경험은 키슬리로 하여금 어린나이에 컴퓨터 언어와 프로그래밍을 숙달할 수 있게 해줬다.
벨라루스 태생이라는 점도 그가 완성도 높은 전쟁 액션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유다. 유년시절 구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벨라루스가 독립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군대문화는 물론 탱크와 같은 병기를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어린시절, 소비에트 연방과 군대는 내게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다”라고 했다. 실제로 그가 어린시절을 보낸 1980~1990년대에 동구권에서는 1990년대는 볼셰비키 혁명과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나 TV방송들이 많이 등장했었다. 키슬리 역시 어린 나이부터 2차대전사 같은 전쟁역사에 심취했다.
한때 아예 군인을 동경하기도 했다. 벨라루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던 때에도 군인을 꿈꿨지만 당시 대학생이 직업군인이 되는 것을 금지하던 법 때문에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군사훈련’이었다. 소총 사격은 물론 대포 사격 훈련까지 받으면서 실제 군인에 준하는 생활을 여러차례 체험하게 된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후에도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후 그간 소련법 안에서 저작권 문제로 접할 수 없었던 게임들이 일시에 싼 가격에 유입되면서 게임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됐다. 그렇게 유입된 ‘문명’,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등을 그는 즐겼는데, 그때의 경험이 그의 게임관을 형성하는 큰 계기가 됐다.
▶ 전쟁게임 전문 회사로 성장중 = 키슬리를 아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그를 ‘에너자이저(기운이 충만한 사람)’라고 평가한다. 키슬리는 “제품에 창의성을 증진시키는 것이 성공하는 워게이밍의 0순위 목표”라고 밝힌다.
워게이밍사의 성공이 향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키슬리가 가진 전투게임에 대한 이해도와 열정이 워낙 대단해서다. 게임 만드는 것을 제외하고 키슬리가 가장 즐기는 취미는 체스다. 그는 체스가 생각하고 싸우는 힘을 길러준다고 이야기 한다. 그의 체스 실력은 일반인 가운데에선 적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상당한 수준으로 알려진다.
워게이밍사는 계속 성장하는 추세다. 월드오브탱크 외에도 월드오브워플래인스, 월드오브워쉽스 등 다른 전쟁게임 분야로 외연을 넓히면서 MMO 전쟁액션게임 전문 회사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사업이 커지면서 본사가 자리잡은 민스크외에도 미국, 프랑스 파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이프러스 등 세계 각국에 오피스를 확장 하는 모습이다.
사실 키슬리의 성공은 대한민국에는 아쉬운 일일 수 있다. 20세기 가장 처절한 전쟁을 겪었고, 여전히 남성 국민의 대부분이 병역의무를 이행해야하는 분단국가에서, ‘사실성 높은 전쟁게임’은 여느 나라보다 잘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창조경제’와 ‘게임강국’을 꿈꾸면서도, 게임을 ‘중독 물질’로 규정하려는 엇박자 행보를 보이고 있을때, 인구 900만 동유럽의 소국에선 전쟁게임의 글로벌 수출 통해 새로운 거부가 탄생하고 있다. 심지어 게임속에는 6.25전쟁 무렵의 우리나라 지형과 풍경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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