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을 위해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일은 법조계의 고질적 병폐인 ‘전관예우’를 타파하는 것입니다.”

지난해 3월 제48대 대한변호사협회장에 취임한 하창우 협회장의 일성은 ‘전관예우 근절’이었다. 그만큼 전관예우 타파는 법조계에서 가장 ‘급박하고도 중대한’ 현안이었다. 퇴직한 고위법관과 검찰간부가 대형 법무법인(로펌)의 변호사로 변신해 재판이나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악습을 하 회장은 ‘사법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비리행위’로 규정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이제 예전과는 달라졌다’고 그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전관들의 손은 이제 법조계를 넘어 재계까지 닿아 있다. 국내 대기업의 사외이사를 보면 전직 법무부 장관부터 검찰총장까지 법조계 고위 공직자 출신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때 법과 정의를 위해 일했던 이들인 만큼 전관들이 대주주의 경영을 감독하고 견제하는 사외이사에 선임되는 것이 일견 타당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전관들이 경영감독보다 공직에서 쌓은 인맥으로 기업에 도움을 주고 고액의 연봉을 챙기고 있어 사외이사가 또 하나의 전관예우 창구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신고없이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법인의 이사가 될 때 소속 지방변호사회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전직 검찰총장이자 현재 대형 로펌의 고문으로 있는 A변호사는 2013년부터 삼성전자의 사외이사를 맡으면서 겸직신고조차 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은 총장 재직 중 그가 수사를 지휘했던 대상이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B변호사도 신고없이 CJ그룹의 사외이사에 앉아 있다. 역시 검찰총장을 지낸 C변호사는 퇴직 후 2년 반만에 농협금융지주의 사외이사로 선임돼 활동 중이다.

이렇게 법을 어긴 전관들은 1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이달 중 이들을 조사위원회에 회부하고 징계신청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과 정의를 외쳤던 이들이 퇴직 후 도리어 법을 준수하지 않는 점은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전관들이 이같은 도덕 불감증에서 헤어나오지 않는 한 대한변협이 말한 전관예우 타파 역시 요원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