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조범자 기자]한국이 ‘무적함대’ 스페인을 맞아 20년 만에 최다실점하는 굴욕을 맛봤다. 아시아권 국가들을 상대로 무실점, 무패행진의 ‘춘몽’에 취해 있던 슈틸리케호가 스페인산 ‘죽비’에 제대로 꿈을 깼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2일(이하 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레드불 아레나에서 끝난 스페인과 친선전서 1-6로 참패했다. 한국이 한 경기서 6실점한 것은 1996년 12월 아시안컵 8강에서 이란전(2-6 패) 이후 무려 20년 만이다. 전반에만 3골을 내주는 등 6실점한 한 한국은 A매치 10경기 연속 무실점과 함께 16경기 연속 무패행진도 마감했다. 한국은 체코 프라하로 이동해 오는 5일 FIFA 랭킹 29위 체코와 유럽 원정 두번째 평가전을 치른다.
2016 유럽선수권대회서 3연패를 노리는 FIFA 랭킹 6위 스페인의 높은 벽을 실감한 한 판이었다. 스페인은 정밀한 패스와 강한 압박으로 특유의 점유율 축구를 마음껏 펼쳐내며 한국(FIFA 랭킹 54위)을 유린했다. 한국의 미드필드 압박 플레이는 너무나 쉽게 뚫렸고, 이것이 수비 실수로 이어지면서 대량 실점을 초래했다.
한국은 전반 3분 놀리토의 결정적인 슈팅을 김기희가 태클로 가까스로 막아냈다. 한국도 5분 뒤에 상대의 볼을 뺏어 손흥민이 왼발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골문을 벗어났다. 손흥민의 유일한 슈팅이었다.
스페인은 전반 30분 페널티아크 부근에서 다비드 실바의 기막힌 왼발 프리킥으로 먼저 골을 터뜨렸다. 자로 잰 듯한 그림같은 프리킥이었다. 알고도 못막을 골이었다. 하지만 이후부터 나온 추가 실점은 허술한 수비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2분 뒤 장현수의 백패스 실수를 틈타 놀리토가 내준 볼을 파브레가스가 텅 빈 골대를 향해 추가골을 넣었다. 전반 38분에는 역습상황에서 놀리토가 또다시 한국 골문을 흔들어 한국은 전반에만 0-3으로 크게 뒤졌다.
슈틸리케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황의조를 빼고 석현준을 투입하고, 후반 16분에는 주세종과 이재성 등 K리그 선수들을 내보냈다.
스페인은 후반 5분 왼쪽 코너킥 상황에서 티아고 알칸타라가 올린 볼을 모라타가 골지역 정면에서 헤딩으로 네번째 골을 기록했다. 3분 뒤에는 오른쪽 측면을 돌파한 베예린의 패스를 받은 놀리토에게 또다시 실점했다.
정신없이 실점한 한국의 유일한 득점은 주세종의 발에서 나왔다. 한국은 이재성의 패스를 받은 주세종의 강한 중거리슈팅이 스페인 수비수 맞고 굴절되며 골문으로 빨려 들어가 가까스로 영패를 모면했다. 주세종의 A매치 데뷔골. 한국은 그러나 후반 막판 수비진이 허무하게 무너지며 모라타에게 6번째 실점까지 하고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역대 전적에서 스페인전 2무 4패의 절대 열세를 이어간 한국은 이날 대패로 그동안 쌓아온 슈틸리케호의 화려한 행보가 빛을 잃게 됐다. 스페인 일간지 마르카는 “한국에 대한 축구교습에는 15분이면 충분했다”고 한국 전력을 혹평했고 특히 전반 32분 실점 장면을 언급하며 “골키퍼 김진현의 어리석은 실수로 한국이 무너졌다”고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후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강조하며 패인에 대해선 “기술적으로 스페인이 우위였다. 유럽과 아시아가 다른 대륙이지만 다른 세계의 축구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평가했다.
선수들의 충격도 컸다. 수비수 윤석영은 “수비수로서 책임이 크다. 수비와 미드필드가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고 했고, 주장 기성용은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무너진 것 같다는 지적에 대해 ”상대는 월드클래스 선수들이다. 한번 무너지면 상대는 그 부분을 공략한다“고 답했다.
소득은 있었다. 아시아권 국가와 약체팀을 상대로 ‘꽃길’을 걸었던 슈틸리케 감독은 축구협회에 “유럽 강팀들과 만나고 싶다”고 요청, 이번 유럽 원정을 성사시켰다. 한국 축구의 정확한 실력을 검증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예상보다 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어 적지 않은 상처를 입긴 했지만, 한국 축구의 문제점과 숙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마치 15년 전인 2001년,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프랑스와 체코에 연달아 0-5 패배를 당하며 ‘오대영’ 별명을 얻은 히딩크호를 연상케 했다. 히딩크호는 아픈 예방주사를 빨리 맞고 고질적인 약점을 보완해 나가며 월드컵 4강 신화를 썼다. 전문가들은 슈틸리케호 역시 스페인전을 쓴 약으로 삼는다면 이란과 우즈베키스탄, 카타르 등과 맞붙을 2018년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서 의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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