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부터 가장 먼 태평양 한가운데

인간이 창조해낸 배설물이 만든 쓰레기섬

최대 3조6000억개 플라스틱 쓰레기에

중국어·일어·영어 이어 한국어가 최다

한국도 쓰레기섬 해결에 책임감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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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태평양을 둘러싼 나라들로부터 밀려온 플라스틱 쓰레기들로 만들어진 쓰레기섬 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 이 쓰레기섬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쓰레기에 한국어가 적혀 있다. 안경찬 PD

“6일간 망망대해를 항해해야 만날 수 있는, 환상적인 바다입니다. 그런 곳에 떠다니는 온갖 플라스틱 쓰레기를 볼 때면, 애끓는(heartbreaking) 심정을 참을 수가 없죠.”

태평양 한가운데 북위 32도 서경 145도. 인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그래서 가장 자연 그 원천의 깨끗함을 간직해야 할 곳. 여기에 한 섬이 있다. 약 160만㎢에 이르는 거대한 섬. 서울(약 605㎢)의 약 2600배, 한반도(22만748㎢)의 약 7배에 달하는, 이 거대한 섬의 정체는 바로 ‘쓰레기섬’이다.

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로 불리는 이 쓰레기섬은 북태평양을 둘러싼 나라들로부터 밀려온 플라스틱 쓰레기들로 만들어졌다.

강에서 바다에서 버려진 플라스틱이 해류를 따라 수개월 수년간 떠돌다가 이곳에 모였다. 삼면이 바다로, 태평양과 맞닿은 우리나라 역시 이 섬을 잉태시킨 국가 중 하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섬은 점점 더 넓게 태평양을 잠식 중이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인간이 창조해낸 배설물이다. 외면할 수 없는, 외면해선 안 되는 쓰레기섬의 실태를 찾아갔다.

▶태평양 쓰레기섬의 실체…참혹한 현장=지난 9월 7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항(港). 금문교를 뒤로하며 대형 유람선을 방불하게 하는 거대한 배 2척이 항구에 도착했다. 글로벌 환경 비영리단체, 오션클린업의 선박이다.

오션클린업은 2대의 선박을 대형 그물로 연결, 쓰레기섬의 쓰레기를 수거해 육지로 옮겨오고 있다. 배 외관 자체는 일반 여객선 같았다. 하지만 안에는 전혀 달랐다. 배 운항에 필수인 장비와 인력을 제외하고 이 거대한 배를 채운 건 단 하나,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였다.

갑판 위에는 하얀색 대형 자루가 끝없이 펼쳐졌다. 개수를 세보려다 포기했을 정도였다. 이 자루에는 쓰레기섬에서 건져낸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득했다. 상당수는 폐어구였다. 폐그물, 폐노끈, 플라스틱 어망, 통발 등이다.

마티아스 예거 오션클린업 환경 및 사회 담당 이사(박사)는 “너무 외딴곳에 있어서 보기 전엔 잘 모른다. 막상 (쓰레기 더미를) 보게 되면 그저 슬플 뿐”이라고 했다.

폐어구뿐만이 아니었다. 믿기 힘든 플라스틱 쓰레기도 많았다. 칫솔, 헬멧, 장난감, 심지어 화장실 변기까지 나왔다. 그는 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손에 들었다. 가장자리에 뜯긴 흔적이 역력했다. “상어 등 물고기들이 떠다니는 플라스틱을 뜯어먹어요. 먹이로 아는 거죠.”

이번엔 한 플라스틱 통발을 내밀었다. ‘영진산업’이란 한글이 선명했다. ‘락스’라고 쓰여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도 있었다. 오션클린업에 따르면 쓰레기섬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쓰레기에 적힌 언어 중 중국어, 일본어, 영어 다음으로 많은 언어가 한국어다.

쓰레기섬을 5회가량 방문한 오션클린업 패드 폰팩 엔지니어는 쓰레기섬을 “초현실적인 곳”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엿새 동안 배를 타고 문명을 떠나 항해하다 보면 너무나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진다”고 했다. 감동도 잠시 그 바다엔 또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 그는 “눈앞엔 플라스틱 조각이 떠다니고, 한번에 18톤을 수거한 적도 있다. 이 모든 게 너무 초현실적이다”고 토로했다.

폰팩 엔지니어는 “도시에 수많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있지만, 이 태평양 한가운데에 수많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떠다니는 걸 상상할 수 있느냐”며 “쓰레기섬을 갈 때마다 애끊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털어놨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이…최대 3조6000억개 플라스틱 떠다녀=쓰레기섬은 이름 탓에 마치 단단한 땅처럼 생각하기 쉽다. 오히려 그러면 다행이다. 뭉쳐 있거나 단단하다면 수거에 더 용이할 수 있다. 오히려 쓰레기섬은 플라스틱 섬보단 ‘플라스틱 스프’에 가깝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넓게 퍼져 있고, 점차 미세화된다. 마치 스프처럼 태평양 바다 위에 퍼져간다.

쓰레기섬은 누구의 영토도 아니다. 그래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제대로 연구조차 되지 않고 있다. 오션클린업에 따르면 쓰레기섬의 플라스틱 무게는 약 10만톤, 총 1조8000억개의 플라스틱 조각이 떠다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역시 추정치일 뿐이다.

한 비영리 시민단체가 부족한 후원금을 모아 연구한 결과일 뿐, 어느 정부도 실태조사, 수거, 대책에 신경 쓰지 않는다. 오션클린업 관계자도 “1조8000억개라는 건 중간 범위 추정치이며, 최대 3조6000억개까지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플라스틱은 시간이 흐르면 점차 미세화된다. 쓰레기섬의 플라스틱도 마찬가지. 거대한 플라스틱은 통상 수면 위에 떠 있지만, 미세 플리스틱화되면 해저까지 퍼지게 된다. 특히 작아진 플라스틱 쓰레기는 해양 생물이 먹이로 오인하기 쉽고, 이렇게 물고기 등에 흡수된 플라스틱은 결국 또 인간으로 돌아온다.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가 밀집한 쓰레기섬은 다른 해양 생태계보다 180배 더 많은 플라스틱에 노출돼 있다. 쓰레기섬 안팎 어장에서 잡히는 바다거북에는 건조중량 기준 최대 74%가 바다 플라스틱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폰팩 엔지니어는 “거북이나 물고기 뱃속에 플라스틱이 가득한 건 이제 쓰레기섬에선 더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했다.

▶한국도 쓰레기섬 책임감 가져야…관심·지원 호소=지금 이 순간에도 태평양의 쓰레기섬은 점차 커지고 있다. 보얀 슬랫 오션클린업 설립자 겸 CEO는 “1970년대부터 쓰레기섬의 크기가 측정됐지만 최근 플라스틱 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바다로 유입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차단하면서 동시에 이미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 수거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정부의 책임감도 호소했다. 슬랫 CEO은 “쓰레기섬의 쓰레기 출처 상위 5개국 중 한 곳이 한국”이라며 “문제를 야기한 국가이기도 하지만, 태평양의 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해 큰 영향을 받는 국가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태평양의 국가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태평양의 거대한 쓰레기섬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샌프란시스코=김상수·주소현 기자, 안경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