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지구대 김다현 경사
산 속에 쓰러진 80대 치매 노인 구조
‘소리 내보라’ 유도하며 위치 파악
“단서 갖고 끈기있게 수색한 덕분”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경찰로서 당연히 해야했던 일을 한 것 뿐이지만, 그래도 그날은 진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서울 신림지구대 김다현 경사는 지난달 21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그날’을 앞으로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날’ 김 경사는 산 비탈로 떨어져 다친 80대 치매 노인을 구조했다.
지난 17일 오후 1시 52분. 순찰을 돌다 근무 교대를 위해 김 경사가 지구대에 막 들어설 때였다. 주거방문 요양보호사로부터 “치매 어르신 A씨가 집을 나간 것 같다. 집 주변을 살펴봐도 보이지 않는다”는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김 경사는 곧바로 신고자부터 만나 A씨의 사진과 휴대폰 번호 등 기본정보를 파악했다. 이내 A씨 번호로 위치 추적을 실시했고, 확인된 위치값을 바탕으로 수색에 돌입했다. A씨는 작은 뒷산이 있는 서울 관악구 난우공원에서 길을 잃은 것으로 추정됐다.
“할머니 제 목소리 들려요? 들리시면 들린다고 말씀해주세요.” 김 경사는 A씨와 전화하면서 난우공원의 등산길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나무 의자가 보인다’, ‘의자 있는 곳에서 쭉 올라왔다’ 등 A씨가 남긴 말들을 기억해 하나하나 단서로 삼았다. 그러면서도 A씨에게 틈틈이 소리를 질러보라고 유도하는 등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자 했다.
“아 왜 이렇게 못 찾아!” A씨가 자신을 바로 찾지 못하는 김 경사에게 짜증을 내던 찰나였다. 김 경사는 흠칫 놀라 가던 길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제가 있던 곳에서 갑자기 할머니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얕게 들려왔어요.”
방향을 틀고 어렴풋이 울려온 소리를 따라 김 경사는 등산로를 내려갔다. 때마침 마주친 등산객 한 명도 김 경사가 가던 길을 가리키며 “저쪽에서 뭔가 신음소리가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경사는 “등산객 말까지 들으니 긴가민가했던 게 확신으로 바뀌었다”면서 “‘내가 헛것을 들은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고, 덕분에 수색에 좀 더 속도가 붙을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마침내 김 경사는 비탈길 수풀 속에 쓰러져 있던 A씨를 발견해 구조할 수 있었다. 당시 A씨는 창백한 얼굴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얼굴과 손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특히 얼굴에선 피가 흐르다 굳은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할머니(A씨)를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어요. 전화상으로는 목소리가 멀쩡하셨고, 할머니도 본인이 다쳤다거나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거든요. 그런데 덤불 속에 쓰러져 피 흘린 채로 절 기다리고 계시더라고요.”
김 경사는 A씨가 체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덮어주었다. 또 눈을 자꾸 감으려고 하는 A씨를 깨우기 위해 A씨의 손을 붙잡고 큰 소리로 말을 걸었다. 이후 A씨는 구급대의 들것에 실려 안전하게 하산한 뒤 경기 안양 소재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김 경사는 “할머니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혹시라도 잘못되시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었는데, 호전 중이며 건강상 문제없는 것 같다는 신고자(요양보호사)의 연락을 받고 한시름 놓았다”고 했다.
그는 초임 시절 겪은 비슷한 사건이 떠올라 더 초조했다고 고백했다. 9년 전에도 김 경사는 노인 낙상사고 신고를 받고 구조에 나선 바 있다. “당시에도 구급대와 함께 어르신을 안전하게 병원까지 이송해 드렸는데, 며칠 뒤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들었거든요.” 그 이후로 마음 한켠이 계속 무거웠다던 김 경사는 “이번 사건에서는 그때와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아 다행입니다”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단서를 갖고 끈기있게 수색한 덕분에 할머니를 안전하게 모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매일 시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또 한 번 생각했죠.” 김 경사는 다양한 분야에서 신고를 접하는 ‘최일선의 지구대 경찰관’으로서 앞으로도 시민 사회를 위해 열심히 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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