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을 무단으로 공개한 유튜버 ‘전투토끼’와 그 아내가 나란히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사적제재’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이유지만, 사건이 발생한 20년 전 가해자들에게 응당한 ‘공적제재’를 내리지 못했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한 숙제는 남아 있다.
창원지법 형사4단독 김송 판사는 23일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유튜브 채널 ‘전투토끼’ 운영자 30대 A 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782만3256원 추징을 명령했다. 또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함께 기소된 A 씨 아내이자 충북 한 지자체의 30대 공무원이었던 B 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A 씨에게 징역 5년을, B 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A 씨는 지난해 6∼7월 유튜브 채널 ‘전투토끼’에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 신상을 무단 공개하고, 일부 피해자에게는 사과 영상을 보내지 않으면 가족 신상을 공개할 것이라고 협박·강요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됐다. 아내 B 씨는 공무원 재직 중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 등 수십명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등 개인정보를 불법 조회한 뒤 남편에게 제공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2004년 발생한 밀양 성폭행 사건은 밀양 지역 고교생 44명이 울산 여중생 1명을 1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다. 당시 가해자 20명은 소년원으로 보내졌고 나머지는 ‘공소권 없음’ 결정이 나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에 A 씨의 신상공개는 많은 지지를 받았고, 밀양시가 직접 나서 사건에 대해 뒤늦게 사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엉뚱한 사람이 가해자로 공개돼 피해를 보는가 하면, 사적제재는 안된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김 판사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인터넷상 떠도는 정보를 근거로 가해자를 특정하고 이들을 중대 범죄로 기정사실로 해 사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우리 법치 근간을 위협하는 행위로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건 피해자 중 상당수는 밀양 성폭행 사건과 무관함에도 신상이 공개돼 사회·경제적으로 매장됐다”며 “향후 유사한 사안에서 명확한 기준과 견해를 제시하기 위해서라도 단호하고 엄중한 처벌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범행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지만 2004년 밀양 성폭행 사건의 불충분한 진상규명과 책임규명이 발단됐다는 점과 이들이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는 점 등을 참작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이 끝나고 신상공개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법정을 빠져나가는 B 씨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등 소란이 일기도 했다.
앞서 지난달에는 밀양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한 또 다른 유튜버 ‘집행인’이 징역 3년에 추징금 566만원을, 공동 운영자는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밀양 사건 가해자라며 20명의 신상을 공개했는데, 그 중 12명이 허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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