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성장률 1%대 추락에도 노동개혁 실종

전문가 “규제 풀어야 성장 반등”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여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연합]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여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정부가 내놓은 ‘AI·반도체 성장전략’은 구호만 요란할 뿐 저성장을 끊어낼 핵심 수단인 노동개혁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해서는 노동시장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국회는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며 개혁 동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2일 발표한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을 통해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을 0.9%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1.8%에서 0.9%포인트 하향조정한 수치로, 잠재성장률도 20여 년 만에 2% 아래인 1.9%로 떨어졌다.

이에 대응해 정부는 내년도 본예산에 확장재정을 반영하고, AI·반도체 등 30대 전략 프로젝트, 100조원 규모 민관 투자펀드, 세제·규제 개혁,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을 포함한 ‘성장전략 패키지’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재정을 마중물 삼아 민간투자를 끌어낸다는 그림이지만 전문가들은 “재정 지출과 민간투자만으로는 잠재성장률 하락을 막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박명호 홍익대 교수는 “정부의 구상은 체질을 바꾸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AI 투자만으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노란봉투법 같은 정책은 오히려 생산성을 제약해 전략과 상충된다”고 꼬집었다.

해외 사례는 이를 입증한다. 프랑스는 에마뉴엘 마크롱 대통령 집권 후 노동개혁과 법인세 인하를 통해 2015년 0.71%였던 잠재성장률을 2023년 1.41%로 두 배 가까이 끌어올렸다. 실업률도 2016년 10.1%에서 2024년 7.4%로 낮아졌다. 이탈리아 역시 2013년 -0.66%였던 잠재성장률을 노동 개혁을 통해 2023년 1.6%까지 회복했다. 마리오 몬티 총리 시절인 2012년에 단행된 노동 개혁이 2014년 마테오 렌치 총리 취임으로 본격화하면서 해고 요건 완화, 부당해고 배상금 상한제, 서비스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한 덕분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참고해야 할 모델은 프랑스·이탈리아식 노동시장 개혁”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한국은 정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 24일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근로 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확대해 하청 노조가 원청 기업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정리해고·해외 공장 이전 등 경영상 결정도 쟁의행위 대상에 포함됐고, 파업 손해배상 청구 제한으로 기업의 법적 구제수단은 크게 줄었다. 이 탓에 우리나라 대표 외투기업인 한국GM은 국회 표결에 앞서 열린 정부-기업 간담회에서 노란봉투법 재고를 공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25일 본회의에서는 ‘더 센’ 상법 개정안이 여당 주도로 통과했다. 개정안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대해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기존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경영계는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기업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경영권 안정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이에 반대해왔다.

전문가들은 노동개혁과 제도 보완이 동시에 추진되지 않으면 장기 성장동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김영익 서강대 교수는 “잠재성장률이 2% 초반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노사 갈등과 지배구조 불확실성을 키우는 입법은 정부 성장전략과 정면 충돌한다”고 말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도 “규제를 풀고 기업 투자를 활성화한 나라들만이 성장률 반등에 성공했다”며 “노란봉투법과 주 4.5일제를 논하면서 성장률 반등을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fact0514@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