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평균 변동폭 0.47%…2017년 이후 최고

대내외적 불확실성 확대에 단기 요인 영향 ↑

주요 인사들 말에 ‘휘청…등락하는 달러·엔

지정학적 불확실성 증대…‘관세 25%’ 협박

“국장 확대, 미장 축소” 국민연금 투자 조정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헤럴드DB]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헤럴드DB]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원/달러 환율이 요동치고 있다. 이달 일평균 환율 변동폭이 ‘비상계엄’ 직후인 지난해 1월보다도 더 컸던 것으로 파악됐다. 2017년 이후 9년 만에 가장 큰 변동폭이기도 하다.

지난해 말 국민연금과 서학개미로 대표되는 수급 불균형이 환율을 끌어올리는 형국이었다면, 올해 들어서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단기적인 상승 요인과 하락 요인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환율이 출렁이는 모양새다.

3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달 서울 외환시장 주간 종가 기준 원/달러 환율의 일일 평균 변동폭은 0.47%였다. ‘비상계엄’ 사태 직후였던 지난해 1월(0.41%)보다도 0.06%포인트 높았다. 특히, 1월 평균 변동폭 기준 올해는 중국의 ‘사드(THAAD) 보복’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1기 행정부 출범이 맞물리면서 글로벌 긴장감이 극한으로 치달았던 지난 2017년(0.63%) 이후 9년 만에 가장 컸다.

환율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아마존 나비의 날갯짓도 환율에 영향을 끼친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을 정도다. 물론 나비의 날갯짓과 환율의 상관관계를 증명하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그만큼 셀 수 없이 다양한, 크고 작은 요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환율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환율은 크게 장기적인 요인과 단기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장기적인 요인들로는 무역 거래(경상수지), 물가나 경제성장률 수준, 생산성 등 거시경제적 지표들이 있다. 단기 요인으로는 자본수지 변동이나 국내 외 금리차이, 각종 뉴스와 투자자들의 기대심리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한은과 한은 비판론자들이 환율 대응책을 두고 이견을 보이는 것도 이처럼 다양한 요소 중 고환율의 원인을 무엇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시각차 때문이다. 비판론자들은 경제성장률이나 ‘코리아 디스카운트’ 등 고환율의 원인이 장기적인 요인들에 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은도 근본적 원인은 인정하지만 우선 단기적인 문제들을 해소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실효적인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두 주장은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에 차이일뿐 모두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환율 수준을 낮추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는 수급 불균형과 기대심리를 개선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장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물가를 안정화하기 위한 정책을 병행해야 근본적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

다만 최근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것처럼 급등락하는 환율 흐름의 원인은 장기적인 요인보다 단기적인 요인에서 찾아야 한다 주장에 힘이 실린다.

① 주요 인사들의 ‘말·말·말’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최근 환율 추세를 보면 국내외 주요 인사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른바 구두개입, 또는 구두개입성 발언이다.

대표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1400원’ 발언이 있다. 지난 21일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환율 문제가 첫 질문으로 나왔다. 마침 환율은 17거래일 만에 장중 1480원을 돌파한 상태였다. 이 대통령은 답변 중 “당국에 의하면 한두 달 정도 지나면 1400원 전후로 떨어질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환율을 직접 언급한 데다, 1400원 초반이라는 특정 환율 수준을 콕 집어 말하면서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발언 직후 환율은 1460원 후반까지 급락했다. 주간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6.8원 떨어진 1471.3원이었다.

해외 주요 인사들의 공격적인 발언도 환율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 ‘달러화 약세를 우려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는데, 시장에서는 이를 달러화 약세를 용인한다는 신호로 읽었다. 이후 달러화 가치는 폭락했고 원/달러 환율은 직전 거래일 대비 23.7원 내린 1422.5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10월 20일(1419.2원) 이후 약 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도 연이어 환율에 대한 구두개입을 하고 있다. 15일 베선트 장관은 구윤철 경제부총리와 만난 뒤 “최근 원화 약세가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과 맞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내면서 원/달러 환율 주간 종가는 11거래일 만에 하락 전환했다.

반대로 29일에는 CNBC와 인터뷰에서 ‘미국이 엔화 강세를 유도하기 위해 개입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결코 아니(Absolutely not)”라고 일축하면서 엔/달러 환율이 급등했고, 원/달러 환율도 덩달아 올랐다.

② 달러 및 엔화 가치의 등락

서울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보이고 있다. [연합]
서울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보이고 있다. [연합]

최근 등락하는 엔화와 달러화의 가치도 원/달러 환율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원화는 최근 엔화와 강력하게 동조화된 상태다. 엔화가 오르면 원화도 오르고, 엔화가 떨어지면 원화도 떨어지는 식이다. 외환 시장에서 원화와 엔화를 같이 묶어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미국보다 금리가 낮고,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확정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두 나라의 수출 분야가 비슷한 것도 원화가 엔화에 동조화되는 요인 중 하나다.

엔/달러 환율은 이달 초 150엔 중반에서 이달 중순 160엔 턱밑까지 오른 뒤 횡보하다가 지난 24일 일본과 미국 당국의 공조 개입 경계감이 시장에 퍼지면서 급락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전날 TV 프로그램에서 “투기적 움직임에 대해 일본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확실히 해 나갈 것”이라고 발언했고, 이어 미국 당국이 외환시장에 본격적인 시장 개입을 하기 전에 취하는 ‘레이트 체크(rate check)’를 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후 152엔대까지 떨어졌던 환율은 29일 “우리는 강달러 정책을 가지고 있다는 말 외에는 언급하지 않겠다”는 베선트 장관의 발언이 알려진 뒤 반등하며 재차 150엔 중반까지 올랐다.

원/달러 환율의 ‘카운터파트’인 달러화 가치도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원화와 달러에 대한 교환 비율이다.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 상대적으로 원화 가치가 오르면서 같은 달러를 보다 적은 원화를 주고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달러화 대비 원화 가격인 원/달러 환율은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달러화 가치가 오르면 환율은 오르는 경향이 있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를 반영한 ‘달러 인덱스’는 이달 초 98선 이후 긍정적 미국 고용지표 발표 등에 점점 올랐다. 19일 전후로는 100 턱밑에서 움직였다. 하지만 그 이후 하락세를 탔는데, 28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달러는)훌륭하다” 발언 직후 전장 대비 1.2% 급락하면서 지난 2022년 2월 이후 4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하지만 이후 ‘엔 개입 부인’ 발언 등에 최근에는 다시 오르고 있다.

③ 지정학적 불확실성 증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기습적인 군사 작전으로 체포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공개했다. [트럼프 트루스소셜 계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기습적인 군사 작전으로 체포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공개했다. [트럼프 트루스소셜 계정]

미국을 중심으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도 원/달러 환율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 금이나 달러 등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에 돈이 몰리게 된다. 반대로 위험 자산으로 분류되는 원화의 수요는 줄어든다. 이는 곧 원/달러 환율의 상승 압박으로 이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 시각) 전격적 군사 작전으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압송한 데 이어 마약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콜롬비아와 멕시코를 비롯해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이란 등에 대해서도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국방예산을 50% 이상 늘려 1조5000억달러(약 2167조7000억원) 규모로 증액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도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추진과 이를 둘러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내부 갈등도 있다. 일각에서는 기존 동맹 관계인 미국과 유럽·나토 간 갈등이 기존 국제질서의 변화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외교적 불확실성도 남아 있다.

④ 트럼프의 ‘관세 25%’ 위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국가별 관세(일명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국가별 관세(일명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

가장 최근에 환율을 출렁이게 한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25% 인상’ 위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 시각)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한국 입법부가 한국과 미국과의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자동차, 목재, 의약품 및 기타 모든 상호관세(국가별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과 난 2025년 7월 30일에 양국을 위한 위대한 합의를 했으며, 내가 2025년 10월 29일 한국에 있을 때 그런 조건을 재확인했다. 왜 한국 입법부는 합의를 승인하지 않았는가”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으로 관세 불확실성이 다시 커지면서 위험 회피 심리도 확산했다. 이는 곧 원화 약세로 이어졌다.

2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직전 거래일 주간 종가보다 9.4원 오른 1450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1400원’ 발언과 엔화 초강세 흐름에 연일 떨어지던 환율은 닷새 만에 상승 전환했다. 같은 날 주간 종가도 전 거래일보다 5.6원 오른 1446.2원으로 집계됐다.

⑤ “국장 확대”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 개선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국민연금공단 본부 전경. [연합]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국민연금공단 본부 전경. [연합]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25%’ 발언 때문에 다소 묻혔지만, 하루 전날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늘리는 내용의 포트폴리오 개선 방안을 발표한 것도 시장에는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국민연금은 26일 오후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를 열고 ‘국민연금기금 포트폴리오 개선방안’을 의결했다. 기금위는 기금 규모 확대에 따른 외환 조달 부담과 외환시장 환경 등을 고려해 올해 해외주식 목표 비중은 기존 계획인 38.9%에서 37.2%로 낮췄다. 국내주식 목표비중은 14.4%에서 14.9%로 확대했다. 외화 조달이 어려워져 해외 투자 비중을 1.7%포인트 줄이고 그만큼을 국내 주식(0.5%포인트)과 국내 채권(1.2%포인트)을 확대한 것이다. 아울러 기금위는 자산군 비중이 목표에서 벗어났을 때 허용범위 내에 있도록 조정하는 작업도 한시적으로 유예하기로 했다.

‘큰손’ 국민연금이 국내 투자를 늘리고 미국 투자를 줄이게 되면 달러에 대한 수요를 낮춰 원/달러 환율도 떨어뜨리는 효과로 이어진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8일 홍콩에서 열린 ‘글로벌 매크로 컨퍼런스’에서 “최근 국민연금이 올해 해외 투자 규모를 절반으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며 “이는 최소한 200억달러 이상의 달러 수요 감소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날 엔화 강세 등의 영향으로 주간 거래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25.2원 떨어진 1440.6원이었는데, 국민연금의 발표 직후 오후 6시께 환율은 1430원 중반까지 더 떨어졌다. 27일 새벽 2시 야간 거래에서는 1443.9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장 서울외환시장 주간 종가 대비 21.9원 떨어지며 지난해 12월 24일(37.9원)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kimsta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