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비 왕조 마지막 후손…이란혁명후 46년 망명생활
비극적 가족사…아버지·남동생·여동생 모두 사망
트럼프, 이란 공습에 과도체제 구심점 부상했지만
이란 붕괴돼도 팔레비 권력 승계 가능성은 희박
군주제 반대·親이스라엘 성향 등 국민적 반감 커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국제 정세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지도자. [더 비저너리]는 헤럴드경제 국제부가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팔레비가 돌아올 것이다. 샤(국왕) 만세! 레자 샤, 신이 당신의 영혼을 축복하길!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지난해 12월말부터 올해 1월까지 이란의 경제난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 나온 말이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무너진 팔라비 왕조가 4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소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한 달 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을 상대로 대규모 공습을 단행했다. 폭격 직후 이란 왕조의 마지막 왕세자 레자 팔레비(65)는페르시아어로 대국민 메시지를 내고 이슬람 정권 전복을 촉구했다. 그는 “이슬람공화국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는 승리에 가까이 와있다. 우리 앞에는 운명을 가를 순간이 놓여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대통령이 용감한 이란 국민에게 약속한 지원이 도착했다”며 이번 공습에 대해 “(무력침공이 아닌) 인도주의적 개입이며, 타깃은 이란 국민이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이끄는) 이슬람 공화국 정권”이라고 했다. 유럽과 미국 곳곳에서 벌어진 반(反)이란 시위에서도 시위대는 현 이란 정권의 붕괴를 요구하며 이란의 마지막 왕의 아들이 과도 통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란 최연소 조종사…미국 유학간 사이 나라는 뒤집혔다
1960년 10월 31일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난 레자 팔레비는 1940년대부터 이란을 통치한 팔레비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팔레이왕의 2남 3녀 중 맏아들이다. 그는 여섯 살 때부터 테헤란의 별도 궁에서 생활했다. 그의 일과는 외국어 학습, 역사 공부, 궁정 예절 교육, 스포츠 활동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레자 팔레비는 이란에서 촉망받던 전투기 조종사였다. 그는 13세부터 비행 훈련을 시작해 16살에는 데즈풀 공군 기지에서 F-5 전투기로 첫 단독 비행에 성공했다. 이로 인해 레자 팔레비는 이란 역사상 최연소 조종사로 기록됐다. 이후 1978년에는 조종사 훈련 과정을 밟고자 미국 리스 공군 기지로 이동했다.
하지만 레자 팔레비가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른 사이 나라는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1979년은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해였다. 당시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세력에 의해 친서방 팔레비 왕정은 축출됐다. 미국에 있던 레자 팔레비도 이슬람 혁명 이후 46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고국 땅을 한 번도 밟지 못한 채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레자 팔레비는 스스로를 새 이란 국왕이라고 선언했지만,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없었다. 결국 그는 수십년간 이란 신정체제 반대 세력을 자기 중심으로 결집하는 데 실패한 채 망명 생활을 어어가야 했다.
레자 팔레비 가족의 비극…여동생·남동생 모두 사망
레자 팔레비의 비극은 팔레비 왕조가 무너진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와 함께 망명생활을 시작한 가족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
레자 팔레비의 가족들은 이슬람 혁명 이후 이집트·모로코·그리스·바하마 등을 전전했다. 한때 고귀한 왕족이었지만 하루아침에 무국적자 신세됐다.
레자 팔레비의 사촌이자 제국 해군 대위로 복무했던 샤흐리아르 샤피크 왕자는 1979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이슬람 세력에 의해 암살됐다. 샤피크 왕자는 이슬람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진 뒤에도 가장 마지막까지 이란에 남아 이슬람 혁명 세력에 맞서 싸운 왕조 일가로 알려졌다. 프랑스 파리로 망명한 뒤에도 저항운동을 조직하기도 했지만, 머리에 두 발의 총격을 입고 사망했다.
설상가상으로 혁명이 일어난 1년 뒤인 1980년, 레자 팔레비의 아버지는 망명지인 이집트 카이로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레자 팔레비 가족에게 거처를 제공했던 안와르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 1981년에 암살되고 나선 이집트에서도 갈 곳을 잃고 미국으로 넘어갔다.
레자 팔레비의 고모인 샴스 팔라비는 아버지와 같은 암으로 1999년에 세상을 떠났다. 2년 뒤인 2001년에는 막내 여동생 레일라 공주가 런던의 호텔방에서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남동생이었던 알리 레자 왕자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고대 페르시아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2011년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레자 팔레비의 기구한 가족사를 둘러싼 동정론이 형성될 것을 우려한 이란 정권에선 이 같은 소식을 최대한 축소했다. 이란 국영 프레스TV는 당시 알리 레자 왕자의 사망 소식에 ‘이란 전 독재자의 아들 사망’이라는 짤막한 기사를 보도했을 뿐이었다.
망명 정부 조직…이슬람 정권 반대 운동 정진
레자 팔레비는 망명 이후에도 40여년간 이란의 자유와 구원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왔다.
실제로 그는 2013년 망명 정부 조직을 구성하고 미국에서 현 집권세력에 대한 반대 활동을 벌여왔다. 지난해 말부터는 이란 전역에서 이슬람 신정 체제와 경제난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자 줄곧 미국의 개입을 호소했다. 지난달 14일에는 독일 뮌헨안보회의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트럼프 미 대통령 등 국제사회에 이란 정권 교체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 레자 팔레비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이란의 민주주의 전환과 번영을 위한 포괄적 전략으로 ▷이슬람 공화국 압박 ▷이란 국민 지원 ▷정권 내부로부터의 이탈 유도 ▷이란인들의 조직화 ▷이란 번영 프로젝트 등 5가지가 제시돼 있다.
지난해 6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 파괴 작전에 돌입했을 당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인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히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아니라는 걸 알 만큼 충분히 똑똑하다”며 “유일한 반역자는 하메네이”라며 이란 정권을 비판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이 격화하자 레자 팔레비는 지난 1일 진행된 CBS 뉴스와의 ‘60분’(60 Minutes)’ 인터뷰에서 “이란을 민주주의로 이끌 과도 지도자 역할을 수락했다”면서도 “군주제로의 회귀가 아닌 세속 민주주의 체제를 옹호하며, 원활한 권력 이양을 추진하고자 한다”며 왕정복고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기도 했다.
이란 정권 수복까지는 불확실…레자 팔레비 체제 가능성도 ‘희박’
레자 팔레비가 정권을 잡는 것은 이란 전쟁의 신속한 종전과 함께 미국과 이스라엘이 기대하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로 꼽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레자 팔레비가 권력을 잡게 된다면 과도정부가 원심분리기와 고농축 우라늄(HEU) 등 핵 자산을 모두 미국에 인도하고, 미사일 프로그램을 폐기하며, 미국 정유 기업에 에너지 시장을 개방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는 현시점에서 가장 실현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전문가들은 최근 레자 팔레비의 평판이 좋아진 것은 이란 국민들이 진정으로 이란이 옛 군주제로 복귀하는 것을 바라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이슬람 공화국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란 정권 붕괴 이후 차기 지도자로 레자 팔레비를 앉히는 것에는 선을 긋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이란 차기 지도자로 옛 왕조 마지막 왕세자인 레자 팔레비도 고려하고 있냐는 취재진 질문에 “내부의 누군가가 더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며 “팔레비도 좋은 사람 같지만, 내부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레자 팔레비는 분명히 영향력을 키웠고, 이란 야권의 선두주자가 됐다. 하지만 그는 분열을 일으키는 인물이지, 통합하는 인물이 될 수 없다.
레자 팔레비의 이란 내 정치적 영향력이 약하다는 점도 그가 정권을 잡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이란 신정체제 붕괴를 원하는 이란인들 중에서도 여전히 왕정복고에 단호한 반대 의사를 밝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란 인구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소수 민족들은 과거 팔레비 왕조가 자치권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팔레비 왕조에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실제로 지난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시위 현장에선 시위대가 손바닥에 ‘노 샤(왕), 노 물라(이슬람 율법학자)’ 문구를 붙인 채 ‘이란 해방’을 외쳐 이란의 왕정복고와 현 정권 모두에 반대하기도 했다.
레자 팔레비가 친미 성향을 넘어 친이스라엘 성향을 지니고 있는 점도 이란 국민들의 반감을 살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이란 야권은 분열과 불신, 지도체제 미정립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외에도 레자 팔레비의 친이스라엘 성향이 정권 수복에 직면해야할 문제로 지목하면서 “레자 팔레비는 이스라엘을 둘러싼 시민들의 해소되지 않은 불만과 감정 또한 함께 마주해야 한다”고 짚었다.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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