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4000만명이 가입한 실손의료보험은 ‘제2의 건강보험’이라 불리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명하게 갈린다. 비급여 남용을 조장하고 도덕적 해이를 구조화하는 ‘의료 낭비의 주범’이라는 비판과, 건강보험의 사각지대를 메우고 중증질환 환자의 경제적 파탄을 막는 ‘사회적 가치의 보루(의료안전망)’라는 옹호가 팽팽히 맞선다.
엄밀히 말하면 두 주장 모두 옳다. 같은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과잉 의료를 유발하는 시스템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의료 파산을 막는 마지막 안전망이다. 따라서 ‘주범인가, 보루인가’ 묻는 질문보다 올바른 질문은 “어떻게 낭비는 줄이고 사회적 가치는 보존할 것인가”여야 한다.
그간 정부와 보험업계는 1세대부터 4세대까지 자기부담금을 높이고 할증을 유도하는 ‘세대관리(상품 개편)’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현실은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고령층·유병자는 보험료 부담 때문에 신세대 전환을 꺼리는 반면, 건강한 젊은 층만 이동하면서 구세대 상품의 위험률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역선택의 악순환이 발생한다. 4세대에 이르러서는 급여 손해율까지 상승하며 과다 이용을 촉진하는 부작용까지 나타났다.
비급여 규모는 매년 10% 이상 성장하고 있으며, 실손보험 가입자가 많은 지역일수록 공급자 유발 수요(Supplier-Induced Demand) 현상도 관찰된다. 소수의 과다 이용이 전체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으로 전가되고, 가입자 풀(pool)이 고령화·고위험화하는 악순환은 결국 시장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세대관리의 역설은 의료 공급 구조, 규제·감독 체계, 가입자 인센티브가 정합적으로 맞물리지 못한 시스템의 실패다.
5세대 실손은 비중증 비급여 보장 범위를 대폭 축소하고 외래 자기부담률을 건강보험 본인부담률과 연동하는 등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 그러나 의료공급자가 새로운 비급여를 개발하거나 기존 급여 진료와 연계해 이용을 유도하는 ‘풍선 효과’는 역사적으로 반복됐다. 상품구조 개편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비급여 관리 체계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근본적인 해법으로 두 가지 전환을 제안한다.
첫째, 비급여 관리 체계의 근본적 강화다.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 확대, 가격 표준화, 의료기관 비급여 청구 정보의 실시간 연계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문제가 되는 비급여는 관리급여로 신속히 편제해 풍선 효과를 차단하고, 공·사보험 간 청구 정보 연계를 법제화해야 한다.
둘째, 사후 통제에서 사전 인센티브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예방 중심의 디지털 건강관리와 연계해 합리적 의료 소비를 실천한 가입자에게 사회적·경제적 신용을 부여한다면, 도덕적 해이를 자연스럽게 억제하는 상생의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보험회사가 수동적 역할에서 벗어나 국민 건강 증진과 의료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이바지하는 사회적 주체로 거듭날 때, 가입자는 건강을 얻고 보험회사는 손해율을 안정시키며 사회는 의료 자원 고갈을 막는 삼각 상생(CSV)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4000만의 실손보험이 의료 낭비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벗고, 진정한 국민 의료안전망으로 그 사회적 가치를 재정립하기를 기대한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부원장
p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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