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지난 12일(현지시각) 인공지능(AI) 기업 앤스로픽의 최첨단 모델인 미토스5와 페이블5에 대해 외국인의 접근을 전면 금지했다. 해외 이용자는 물론 미국 내 외국 국적자와 외국인 직원들까지 사용이 차단됐다. 페이블5가 일반에 공개된 지 불과 사흘 만에 내려진 전격적인 조치다. AI 모델에 대한 첫 수출통제로, AI도 반도체나 군사기술처럼 국가 안보와 직결된 영역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발단은 페이블5의 안전장치를 우회하는 이른바 ‘탈옥(jailbreak)’ 가능성이 제기된 데 있다. 페이블5는 해킹 공격이나 생화학무기 개발 등에 악용될 수 있는 명령을 차단하도록 설계됐지만, 이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됐다고 한다. 미국 정부는 악의적 세력이 이를 활용할 경우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일부 외신은 중국과 연계된 세력이 모델에 접근했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규제 배경으로 거론됐다고 보도했다. 결국 백악관은 앤스로픽에 서비스 중단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수출통제라는 초강수를 꺼냈다.

미국 정부가 강경 대응에 나선 것은 미토스와 페이블의 성능이 그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두 모델은 소프트웨어 취약점을 찾아내고 보안 체계를 분석해 공격 가능성까지 예측할 수 있는 전문가급 사이버 보안 역량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국가 기반시설의 보안 점검과 사이버 방어에 활용될 수 있는 반면, 악용될 경우 치명적인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AI가 공격하고 AI가 방어하는 시대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AI 경쟁력이 선두권과 뚜렷한 격차를 보인다는 점이다. 최근 AI 성능 평가 기관 아티피셜 애널리시스에 따르면 페이블5가 세계 1위를 기록했고, 오픈AI와 구글이 뒤를 이었다. 그 아래에는 알리바바·딥시크·문샷AI·샤오미 등 중국 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는 한국을 미국·중국에 이은 3위권 국가로 평가했지만, 실제 경쟁력은 선두권과 거리가 있다. 독자 모델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국가라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갈 길이 멀다.

한국으로선 중국의 성장방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규제로 최첨단 칩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수많은 기업들이 성능 경쟁을 벌이고 낮은 가격과 개방형 모델로 AI 생태계를 키워왔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경쟁력을 축적한 것이다. 우리도 더 많은 기업이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데이터와 컴퓨팅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제조업·공공서비스·한국어 분야 등 우리의 강점을 살린 AI 생태계 육성도 서둘러야 한다. AI 기술이 국가 경쟁력과 안보를 좌우하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