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빅테크인 애플발(發) ‘칩플레이션’(반도체 가격 급등으로 인한 물가 상승) 우려와 메타발 인공지능(AI) 수요·투자 둔화 위협이 한국과 미국, 일본 증시를 흔들었다. 2일까지 사나흘간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의 마이크론, 일본의 키옥시아 등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동시에 급락세를 보였다. 표면상으로는 AI의 거품론과 투자 과잉론의 확산에 따른 투자 심리 불안으로 분석되지만, 본질적으로는 AI 서비스 전방 기업인 빅테크와 AI 후방의 반도체 공급사 간의 수급·가격 전쟁, 즉 AI 생태계 내 주도권 다툼 측면도 크다.

AI 확산에 따라 반도체가 크게 부족하게 되면서 과거 빅테크 일방 우위였던 칩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갑을 관계’가 변화를 맞이하며 일어난 갈등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는 글로벌 증시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올들어 한국과 대만, 일본 증시에서 반도체 기업들이 초강세를 보인 것은 물론이고 미국에선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상반기에만 93% 급등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반면 뉴욕증시 기술 대장주들인 ‘매그니피센트7’(M7)의 시가총액은 6월에만 2조3000억달러(약 3560조원) 증발했다. M7 중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조업체 엔비디아를 제외하고는 알파벳·애플·마이크로소프트(MS)·메타플랫폼·아마존·테슬라 등 대부분이 개인·기업 고객 대상의 기술 서비스기업이자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기업)다.

최근 AI생태계 판도 재편과 이로 인한 빅테크-반도체기업 간 수급·가격 주도권 경쟁, 이로 인한 증시의 변동성은 우리 경제와 산업계엔 ‘반도체 의존성’과 ‘미국 빅테크 투자 의존성’이라는 치명적인 취약점을 재확인시켰다. 빅테크들이 AI 투자를 축소하거나 칩 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자체 칩 개발을 서두를 경우 한국 경제와 산업 생태계는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

유일무이한 돌파구는 프런티어급(최첨단) AI, 소버린(국가 독자) AI 모델의 개발이고, 이에 기반한 AI 전방 산업 생태계의 구축이다. 3일 정부가 반도체 초과 세수를 활용해 최첨단 독자 AI 모델 개발을 논의·검토 중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는데, 진척 정도는 아직 공식 확인된 바 없으나 향후 국가 전략으로 삼아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프런티어급·소버린 AI 모델이라는 강력한 전방 산업의 기둥이 있어야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AI응용서비스까지 연결되는 전과정 완성형(풀스택) 생태계를 갖출 수 있다. 이는 국가적 자본·기술·인력을 총화해야 가능한 일이다. 정부와 기업의 각자도생으로선 어림없다. ‘반도체강국’에서 ‘AI강국’으로 도약하지 않으면 한국은 ‘고급 부품 생산 기지’로서 언제나 ‘외풍’에 흔들리는 처지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