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5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반도체 호황 등으로 발생한 추가 세수를 재원으로 미래 대응 기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3대 메가 프로젝트 지원을 포함한 미래 성장 동력 창출, K자형 양극화 대응, 2030 청년을 위한 주거와 창업·일자리 지원 등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같은날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AI(인공지능)는 기술혁명이 아니라 생산 혁명”이라며 “국가는 더 이상 시장의 규제자가 아니라 전력망을 구축하고 산업부지를 조성하며 공급망을 조직하는 생산 플랫폼”이라고 했다. 김 실장은 생산 인프라 구축과, 확대재생산으로 이어지는 분배와 복지 등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현대 민주주의사회에서 정치의 본질적인 기능은 자원의 공정한 배분이며, 경제 성장을 통한 국가공동체의 발전이라는 점에서 전적으로 옳은 방향이다. AI의 시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의 발전에 따른 국가적 부(富)의 증가는 과거의 투자와 기술개발, 노동투입의 결과다. 이를 현재에 모두 탕진하지 않고 미래 성장과 다음 세대를 위해 축적하고 투자하는 일은 ‘과거·현재·미래 간 자원 배분의 공정성’과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 간의 분배 정의’라는 관점에서도 매우 타당하다.

현재 우리의 가장 큰 국가적 의제가 ‘반도체’와 ‘청년’ 문제로 표상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반도체 호황은 글로벌 수준에선 국가간 패권 다툼과, AI생태계 내 업종 간 이윤 경쟁의 격화를 불러왔고, 국내에선 성과 배분과 투자 확대를 두고 노사·지역·세대·계층간 갈등의 진원이 됐다. 고용과 교육, 주거, 결혼 뿐 아니라 일탈과 범죄, 가치관 혼란 등을 모두 포괄하는 청년 문제는 AI 확산과 맞물려 더욱 심각한 양상이 됐다.

다만 의제설정과 정책방향이 실행의 적절성과 정당성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정교한 세부 설계가 필요하다. 가령 미래대응기금이 또 하나의 재정 지출 통로나 정치적 선심사업의 재원이 돼서는 안된다. 기금 운용은 정권의 이해가 아니라 철저히 기업의 요구와 경제성에 입각해야 한다. 양극화 극복과 청년 지원 역시 퍼주기식 복지가 아닌 내수 진작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가 돼야 한다. 청년을 위한 투자 설계에는 청년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

김실장의 국가 역할론이 시대착오적인 국가주도성장론이나 ‘큰 정부론’이 돼서도 안된다. 정부는 규제를 합리화하고 인프라 구축과 연구개발 지원 역할에 충실해 기업이 혁신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야지 시장에 개입하면 안된다. ‘큰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용과 경영 간섭을 경계하고, 전략과 설계·실행에 능한 ‘작지만 똑똑한 정부’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