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예약·당일 취소에도 배상 강제 못 해
‘소비자 분쟁 해결기준’ 있지만 유명무실
정부, ‘정당한 사유 없는 예약취소’ 입법 검토
[헤럴드경제=김도윤 기자]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요? 저희는 휴가 날짜 맞춰 일부러 시간 낸 건데 미리 연락도 없으시고 멀리서 가는 거라 이미 출발한 상황인데 너무 무책임하시네요”
숙박업소가 중복예약을 받은 뒤 입실 당일 일방적으로 예약을 취소해 여름휴가를 망쳤다는 소비자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소비자에게 책임이 있을 경우 높은 위약금을 물리면서도 정작 업체 측 잘못으로 예약이 취소됐을 때는 소비자가 입은 추가 피해를 제대로 보상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인 박모(30) 씨는 남편과 부모님 그리고 동생 부부와 함께 10년 만에 가족여행을 준비했다. 하지만 여행 당일 숙박업체의 갑작스러운 예약 취소로 휴가 계획이 엉망이 됐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박씨는 지난 5월 세종시의 한 한옥 숙박업체에 연락해 방을 예약한 뒤 6월 잔금을 모두 이체했다. 하지만 입실 당일인 지난 2일 체크인 방법을 문의하자 숙박업체 측은 돌연 “에어컨이 고장 나 숙소를 이용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박씨는 “최소한 숙소까지 이동하는 데 들어간 유류비라도 피해 보상을 요구했지만 업체는 ‘에어컨이 안 돼도 그냥 방을 이용하고 싶으면 써라’는 식으로 답했다”며 “원금 58만원 역시 환불해 주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지금까지도 입금해 주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다.
같은 숙박시설에서 배모(29) 씨도 지난 15일 비슷한 일을 겪었다. 대학 동문들과 1박2일 여행을 계획한 배씨는 지난 6월 에어비엔비를 통해 한옥 숙소를 예약했다. 일행은 11명이었고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도 있어 방이 여러 개인 대형 숙소를 골랐다.
방을 예약한 직후 숙소 업주는 배씨에게 “플랫폼 예약을 취소하고 직접 계좌이체를 하면 90만원에 이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고민 끝에 숙박비와 보증금 등 총 95만원을 계좌로 송금했다. 여행 전날에는 바비큐 이용료 3만원도 추가로 보냈다.
그러나 숙소 이용 당일 입실 예정 시각인 오후 2시가 지나도록 별다른 안내 문자가 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배씨가 업주에게 전화를 걸자 그제야 숙박시설 업주는 “숙소에 문제가 생겨 이용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일행이 숙소에 도착해 확인해 보니 해당 숙소에는 이미 다른 투숙객들이 머물고 있었다.
배씨는 “전날 바비큐 비용까지 받으면서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가 숙소에 도착한 뒤에야 이용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며 “상습적으로 이중계약을 하는 업체에 제대로 된 피해 보상이나 책임을 물을 방법이 마땅치 않아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3년간 숙박업체 소비자 피해구제 신청 5517건
휴가철 숙박업체의 일방적인 예약 취소나 계약 불이행 등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21일 한국소비자원의 ‘최근 3년간 숙박업소 관련 신청 이유별 피해구제 현황’에 따르면 2024년부터 지난 6월까지 숙박시설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누적 5517건이었다. 연도별로는 2024년 1919건에서 지난해 2662건으로 38.7% 증가했다. 올해 역시 지난 6월까지 936건이 접수됐다.
신청 이유별로는 ‘계약해제·해지/위약금’ 관련 피해가 2513건으로 전체의 45.6%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숙박업체가 계약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계약불(완전)이행’은 930건(16.9%) 이었다.
청약철회 830건(15.0%), 품질 관련 344건(6.2%), 부당행위 329건(6.0%), 안전 관련 165건(3.0%)이 뒤를 이었다.
‘소비자분쟁 해결기준’ 유명무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선 사업자의 귀책 사유로 숙박 계약이 취소된 경우 소비자에게 어떤 배상이 적절한지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당사자 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권고 사항일 뿐 법적인 강제력은 없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품목별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숙박업체의 책임으로 예약이 취소될 경우 취소 시점에 따라 계약금 환급에 더해 추가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름철 성수기(7월 15일부터 8월 24일까지) 기준 평일에 업체 측 사정으로 숙박을 취소할 경우 이용 예정일 10일 전까지는 계약금만 환급된다. 7일 전 취소는 계약금 환급에 더해 총 숙박요금의 10%, 5일 전은 30%, 3일 전은 50%를 각각 추가로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이용 하루 전이나 당일 업체가 예약을 취소하면 그에 상응하는 추가적인 손해배상을 하도록 정하고 있다. 주말에는 배상 기준이 이보다 더 높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양 당사자가 공동의 합의안을 끌어낼 수 있도록 기본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지만, 분쟁조정은 사업자와 소비자가 서로 타협과 양보를 통해 해결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사업자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를 강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민사소송으로 갈 경우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이 법원의 판단에 참고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소비자원의 피해구제 절차도 사업자가 합의 권고에 응하지 않거나 연락을 끊으면 사실상 피해 구제를 이어가기 어렵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소비자원은 경찰이나 법원처럼 사업자에게 조치를 강제하거나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당사자들에게 연락해 합의 권고를 타진하는 역할을 할 뿐 전보 등을 보내 연락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최종적으로 연락이 닿지 않으면 종결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비자원은 “예약이나 결제 관련 자료를 잘 보관하고 투숙 일까지 기간이 남아 있더라도 숙소에 예약 확정 여부를 미리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사업자가 임의로 예약 취소를 요구한다면 곧바로 취소하기보다 통화 녹취나 문자메시지 등 관련 자료를 확보해 숙박 예약 플랫폼 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시나 지자체 차원에서 바가지요금을 받거나 일방적으로 예약을 취소하는 숙박업소에 대해 단속에 나서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다. 숙박업은 업종에 따라 공중위생관리법이나 관광진흥법 등의 적용을 받지만, 일반적인 예약 취소 행위 자체를 행정적으로 제재할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 6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부산 공연을 앞두고 숙박업소의 일방적인 예약 취소 등 관련 민원이 집중되자 정부는 ‘바가지요금 근절대책 이행 현황 및 향후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바가지 안심가격제도’ 도입과 함께 정당한 사유 없는 일방적인 예약 취소를 제재하기 위한 관련 법률 개정 방안이 담겼다.
ki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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