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목표
2029년 고난도 작업 가능한 모델로 고도화
“생성형 AI 뒤처졌지만 피지컬 AI 경쟁은 이제 초기”
“글로벌 AI 수장 한자리에 모은 韓…제조 경쟁력이 최대 무기”
中 로봇·자율주행 데이터 유출 우려…“두뇌 남에게 맡길 수 없어”
주 52시간 규제 완화 요청엔 “사회적 해법 필요”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미국의 인공지능(AI) 점수를 100으로 기준을 세운다면, 중국은 70점, 우리나라는 35점 정도입니다.”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한국의 생성형 AI 기술 수준을 미국의 3분의 1가량으로 평가했다. 다만 아직 뚜렷한 승자가 정해지지 않은 피지컬 AI에서는 얘기가 다르다고 봤다. 반도체와 자동차, 로봇 등 세계적인 제조 기반을 갖춘 만큼 이 분야에서는 ‘글로벌 1강’까지 노려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정부는 내년까지 로봇의 ‘두뇌’ 역할을 하는 범용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고, 2029년에는 고난도 작업까지 수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류 차관은 27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제290회 경총포럼에서 ‘국가 미래산업과 피지컬 AI’를 주제로 강연하며 “AI는 상당히 늦게 뛰어들었지만 피지컬 AI는 경쟁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글로벌 1강이 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고 밝혔다.
피지컬 AI는 화면 안에서 정보를 생성하고 추론하던 AI가 로봇·자율주행차·드론 등 물리적인 몸체와 결합해 현실 세계에서 상황을 인지하고 행동하는 기술이다. 정부는 피지컬 AI를 반도체, AI 데이터센터와 함께 국내 산업을 혁신할 ‘3대 메가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류 차관은 생성형 AI 분야에서 한국이 처한 현실부터 짚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생성형 AI 분야 발전 속도는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라며 “중국은 미국의 턱밑까지 와 있고 우리는 아직 거기까지 못 온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피지컬 AI에서는 한국에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존 생성형 AI가 인터넷상의 텍스트와 인류가 축적한 지식을 학습했다면 피지컬 AI는 온도와 습도, 경사, 바람 등 현실 세계의 물리 법칙은 물론 실제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익혀야 한다. 결국 공장과 생산라인 자체가 AI를 훈련시키는 거대한 학습장이 되는 셈이다.
류 차관은 “제조 현장에 피지컬 AI가 들어오려면 제조 현장에서 학습해야 하는데 중국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처럼 제조 기반을 갖고 있는 나라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강력한 제조 기반과 산업 인프라를 갖고 있고, 대체 불가능한 반도체 생산 역량도 갖추고 있다”며 “이런 역량을 합치면 피지컬 AI에서 글로벌 1강도 가능하겠다는 게 정부의 목표”라고 했다.
정부는 로봇 ‘두뇌’ 개발에도 속도를 낸다. 과기정통부가 범용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고, 산업통상자원부는 물류와 제조 등 실제 현장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특화 모델을 만드는 ‘투트랙’ 방식이다.
류 차관은 “과기정통부의 목표는 고난도 작업까지 가능한 모델을 2029년까지 만드는 것”이라며 “내년 정도에는 엔비디아가 현재 하고 있는 파운데이션 모델 수준의 모델을 만들겠다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로봇이 현실 공간으로 나온 만큼 ‘두뇌 국산화’는 산업 안보 문제와도 직결된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피지컬 AI가 제조 현장에 본격 투입되면 로봇이 공장 내부를 직접 보고 움직이며 기업의 생산 노하우와 데이터를 습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류 차관은 중국산 자율주행차가 주행 과정에서 취득한 정보를 중국 서버로 보내는 문제를 사례로 들며 “중국 로봇을 제조 현장에 갖다 놓고 자기가 보고 있는 노하우를 다 중국으로 보낸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악몽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도 중국이나 어떤 나라에 의존해서는 안 되고, 두뇌에 해당하는 부분은 더더욱 자기 머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하드웨어 경쟁력은 보완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한국은 산업 현장에서 로봇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핵심 부품의 내재화율은 낮아 일본과 독일 업체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게 류 차관의 설명이다. 정부는 액추에이터와 로봇 손, 센서 등 핵심 부품 국산화와 함께 피지컬 AI를 훈련시킬 데이터 확보에도 나설 계획이다.
류 차관은 한국 기업들이 이미 글로벌 AI 산업에서 갖는 위상도 피지컬 AI 경쟁의 밑천으로 꼽았다.
그는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I 서밋을 준비했던 경험을 소개하며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 등 글로벌 AI 업계를 이끄는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장면을 언급했다.
류 차관은 “이런 분들은 한 분 한 분 모시기도 힘들다. 이는 우리 기업들이 갖고 있는 역량이 이 정도로 파워풀한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며 한국 기업의 반도체·자동차·제조 경쟁력이 글로벌 AI 기업들을 한국과 협력하게 만드는 핵심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강연 뒤 질의응답에서는 중국과의 AI 경쟁과 주 52시간제를 둘러싼 질문도 나왔다.
한 참석자가 중국 기업들이 이른바 ‘996’(오전 9시 출근·오후 9시 퇴근·주 6일 근무) 방식으로 연구개발에 몰두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경쟁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류 차관은 직접적인 제도 평가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최근 중국 청두의 화웨이 연구개발(R&D)센터를 방문한 경험을 소개하며 “대규모 투자도 그렇고 인력들의 수준도 그렇고, 투자하고 있는 시간이나 환경들을 보면서 우리도 많은 사회적인 고민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법적·사회적 환경의 제약 속에서도 국내 AI 기업들이 나름대로 해법을 찾아가면서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다”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좋은 해법이 나와 이런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주 52시간제 완화 여부에 대해서는 “제가 그쪽 분야에 대해 답변드리기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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