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싱크넥스트26’ 올라

세대 관통하는 음악의 힘 증명해

내년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 열어

“추억 좋다 한들 지금만큼 좋을까”

동시대 공연 축제 ‘싱크넥스트26’ 무대에 선 김창완 [세종문화회관 제공]
동시대 공연 축제 ‘싱크넥스트26’ 무대에 선 김창완 [세종문화회관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청춘’의 고백은 역설로 점철돼 있었다. 가장 찬란한 찰나를 통과하던 그 시절, 김창완(72)은 이 노래를 썼다.

“‘청춘’, 뭐 다들 아시겠지만, 이거 제 아들 돌날 만든 노래입니다. 친구들 술 마시라고 하고선 옆방 가서 썼어요. 그 나이에 무슨 정신으로 이런 걸 만들었는지, 지금 보면 가소로워요.”

최근 세종문화회관의 동시대 공연 축제 ‘싱크 넥스트26’ 무대에 선 김창완은 ‘청춘’을 부르기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회고에 객석엔 가벼운 웃음이 번진다.

뒤늦게 알아차린 이별에 ‘얼어붙은 마음을 붙잡고’(‘회상’ 중) 가던 길을 멈춰 선다. 거리 위로 ‘덧없는 청춘’이 파도처럼 밀려가고, 돌아선 사람의 의미를 떠올리던 자리마다 ‘시간’이 새겨진다.

그의 노래는 반세기 가까이 다시 불렸다. 객석은 기존 ‘싱크 넥스트’와는 달리 지긋한 연령대의 관객이 상당수 채웠다. 산울림과 김창완을 듣고 자란 소년·소녀들이 중년을 훌쩍 넘겨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관객들을 마주하며 지난 시간을 돌아본 김창완은 자신이 불러온 ‘노래들을 향한 헌시’를 썼다며 읊조린다. 제목은 ‘내 노래’.

“오십 년 동안 부른 남루한 노래, 소매가 나달나달하고 단추가 떨어지고, 해어지고 닳고 색도 바래고 (중략) 엄마가 부르던, 유행을 타고 삼촌이 부르던, 하소연 하듯 아버지가 부르던, 나의 추억이 아닌 어디선가 흘러나오던, 그걸로 입에 풀칠도 하고, 그걸로 애도 키우고, 그걸로 봉양도 하던 남의 얘기 같은 내 노래.”

내년이면 데뷔 50주년을 맞는 그는 올해 ‘싱크 넥스트’ 무대에 선 최고령 아티스트다. ‘싱크 넥스트’ 측은 산업 시스템으로 확장한 K-팝의 음악적 유산이자 뿌리를 산울림에서 찾기 위해 김창완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동시대 공연 축제 ‘싱크넥스트26’ 무대에 선 김창완 [세종문화회관 제공]
동시대 공연 축제 ‘싱크넥스트26’ 무대에 선 김창완 [세종문화회관 제공]

동시대 공연예술을 표방하는 ‘싱크 넥스트’에서의 첫 공연을 마치고 만난 그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현재와 조율할까 적응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누가 이 공연을 어떻게 보느냐, 그것 자체가 컴템포러리”라고 했다.

AI 습격에 달라진 시대 “음악의 본질은 결국 다르지 않아”

이 무대를 준비하며 그가 마음에 둔 핵심은 ‘동기화’였다. 시대, 세대와의 온전한 ‘동기화’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거목에게도 기꺼운 숙제였다. 하지만 첫 공연을 마치고 ‘뜻밖의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는다.

김창완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 지 꽤 됐다. 서울이니 청취자가 상당수 오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물어보니 라디오를 진행하는지도 몰랐다”며 “어제 진짜 충격받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전국 어디를 가든 ‘바람’님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청취자들이 사인과 사진을 요청해왔다. 그런데 ‘문화의 중심’이자 인구 집중지역인 서울, 그것도 광화문 한복판에서 김창완은 ‘시대의 변화’를 목격했다. 그가 음악을 시작한 50년 전과는 소비 방식도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한다. 김창완은 “새로운 음악이 사람에게 전달되고, 마음에 심어지고, 감동으로 피어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요즘은 라디오가 그렇게 파워가 없다”고 했다.

“옛날에 음반 회사 어르신들이 적어도 100번은 들려야 노래가 알려진다고 했어요. 100번은 귀에 걸려야 (청자에게) 자기 노래가 되든지 아니든지 하죠.”

스마트폰 안에서 무수히 많은 노래를 재생하는 ‘개인 맞춤형’ 시대가 되며, 낯선 곡이 ‘발견’되는 일은 드물어졌다. SNS와 알고리즘이 주도하는 파편화된 청취 환경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김창완은 “이제 내 노래가 100번 들린다는 것은 환상”이라며 “그래도 SNS는 안 하려 한다. 너무 오래 안 하니 이제와 하기도 뭣하다”며 웃었다.

동시대 공연 축제 ‘싱크넥스트26’ 무대에 선 김창완 [세종문화회관 제공]
동시대 공연 축제 ‘싱크넥스트26’ 무대에 선 김창완 [세종문화회관 제공]

시대의 변화와 흐름 위에서 다양한 세대를 만나는 그가 매섭게 경계하는 것은 ‘기술의 위협’이다. 진화하는 기술이 예술과 인간을 잠식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 그는 “SNS를 하면 내가 갖게 되는 포상 자체가 두렵다”며 “SNS는 배달음식을 먹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주문하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다”고 했다.

창작의 영역까지 넘보는 AI(인공지능)를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AI는 악마”라며 웃었다. “요즘 추기경 역할로 드라마를 찍고 있어서 이런 표현이 나온다”는 그는 “유튜브를 하다 보면 AI로 음악 만들고 그림을 그리라는 광고가 매일 뜬다. 휘파람만 불어도 음악을 만들어준다며 현란하게 현혹한다”고 꼬집었다.

사실 음악계에도 이미 AI의 파고가 밀려들었다. 대중음악은 물론 공연예술계 전반에도 AI 덕에 창작의 문턱이 낮아졌다. 상당 부분에서 ‘창작자’의 역할까지 AI와 공유한다. 김창완은 그러나 “AI는 쓰고 싶은 사람은 쓰면 된다”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든 음악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AI의 맹점은 아름다운 음악이나 인성, 감성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엄청난 세계로 바뀌어 있다고 믿게 되는 것, 그래서 음악의 본질도 달라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가 믿는 것은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의 힘이다.

“지금도 통기타 하나에 노래를 하면 눈물을 펑펑 흘리는 사람이 많아요. AI에게 사람을 펑펑 울려보라고 하세요. (웃음)”

김창완이 들려주고자 하는 음악의 정수엔 ‘감각의 회복’이 있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사람이 보고 듣고 느끼는 ‘감정의 경험’을 대신할 수 없다고 그는 확신한다. 김창완은 “최근엔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연주를 듣고 어떻게 저렇게 칠 수 있을까 너무나 감탄했다”며 “AI가 만들어주는 것이 문화의 전부라 믿고 존 케이지, 백남준, 임윤찬과 같은 예술가들을 통해 받는 문화적 경험을 밀어낼까 염려된다”고 했다.

동시대 공연 축제 ‘싱크넥스트26’ 무대에 선 김창완 [세종문화회관 제공]
동시대 공연 축제 ‘싱크넥스트26’ 무대에 선 김창완 [세종문화회관 제공]

과거가 아닌 ‘지금’에 동기화…“추억이 좋다 한들 지금만 할까”

김창완이 바라보는 지금의 대중음악계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K-팝이 고착된 장르로 불리는 것은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그는 그것이 ‘문화적 현상’이 된 지금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김창완은 “K-팝이나 K-컬처가 우리가 잘 모르는 어떤 외국인이나 타인의 일상이 되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며 “그것이 얼마나 멋지고 대단한 일이냐”고 했다.

내년이면 데뷔 50주년을 맞는 김창완과 산울림은 한국 대중음악의 기반을 닦은 대표 밴드다. 서정적인 노랫말, 따뜻한 선율에 불안정한 리듬과 사이키델릭한 질감을 얹은 실험정신은 산울림 음악의 상징성이다. 김창완이 자신과 산울림의 기념일을 돌아보는 방식은 좀 다르다. 그는 과거를 붙잡지도, 추억하지도 않는다. 김창완은 “추억을 파먹기 싫다. 추억이 아무리 좋다 한들, 지금만큼 좋겠냐”고 했다. 그래서 그의 50년은 현재형이다.

50주년을 맞는 내년엔 요양원, 경로당, 어린이집 등을 찾아가 ‘성암 음악회’를 열 계획이다. 성암은 김창완의 호다. 그는 “1970년대 후반 산울림을 청춘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주신 분들이야말로 K-팝의 초석을 놓으신 분들”이라며 공을 돌렸다.

그러면서 “반백 년 동안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을 담아 정성껏 마련할 것”이라며 “개인적으로는 먼저 떠난 막내 김창익을 부르는 초혼의 노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생일파티 같은 공연을 위해 그가 강조하는 것은 ‘행복감’이다. 아름다운 추억에 기대지 않고,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 있는 데서 생을 완성해야 해요. 오지 않을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고, 이 순간 나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여야죠. 그게 바로 진정한 ‘싱크’ 아닐까 싶어요. 자기 자신과의 싱크로율을 끊임없이 높여 나가는 거죠.”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