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경찰조직의 과오 은폐 목적으로 수사 가로막아”

박성주 전 본부장 “강력한 유감…정상적 업무지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철 국가수사본부의 모습. 윤창빈 기자
서울 서대문구 경찰철 국가수사본부의 모습. 윤창빈 기자

[헤럴드경제=양근혁 기자] 검찰이 광주 여고생 살인범 장윤기에 대한 경찰 수사를 지휘한 박성주 전 국가수사본부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박 전 본부장이 장윤기의 외국인 여성 스토킹·성범죄 사건에 대한 경찰의 부실 대응이 여고생 살인 사건으로 이어지게 됐다는 비난 여론을 우려해 “강간 사건은 조용히 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려 일선 수사팀의 병합수사를 가로막았다고 판단했다.

광주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봉진 부장검사)은 박 전 본부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2일 밝혔다. 최모 국수본 강력계장, 민모 전 국수본 여청범죄수사과장, 이모 국수본 성폭력범죄수사계장 등 3명도 같은 혐의로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 6월 정년퇴직한 박 전 본부장을 제외한 이들은 모두 현직 경찰이다.

검찰에 따르면 장윤기는 지난 4월 26일부터 직장 동료였던 외국인 여성을 스토킹하던 중 5월 3일 피해자의 주거지에 침입해 성폭행·감금한 혐의를 받는다. 해당 사건 피해자는 같은 날 112에 스토킹 신고를 했지만 출동 경찰은 정식 사건 접수 없이 현장 종결했다. 장윤기는 이틀 뒤인 5월 5일 귀가하던 여고생을 납치·강간하려다 흉기로 살해하고, 이를 구조하려던 남학생도 살해하려 한 혐의로 체포됐다.

광주 광산경찰서 수사팀은 두 사건 사이에 시간적·장소적 연관성이 있고 장윤기의 살인 동기를 밝히기 위해서도 함께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수사팀은 스토킹·강간 피해자를 직접 조사한 뒤 광주경찰청을 통해 국수본에 두 사건을 병합해 수사하겠다는 계획을 보고했다.

검찰은 병합수사 필요성이 보고됐음에도 박 전 본부장이 경찰의 스토킹 신고 부실 대응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우려해 병합수사를 막은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경찰은 이른바 ‘남양주 스토킹 살인 사건’을 비롯한 스토킹 살인 사건에 대한 부실 대응으로 비판을 받던 상황이었다.

검찰 조사 결과 박 전 본부장은 보고를 받은 뒤 최 계장에게 “강간 사건은 조용히”, “오픈되지 않게 하라”, “살인 사건과 스토킹·강간 사건은 각각 따로 해라”는 취지로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박 전 본부장이 두 사건의 연관성이 공개될 경우 경찰의 스토킹 신고 부실 대응과 함께 ‘경찰이 적정하게 대응했다면 막을 수도 있었던 살인 사건’이라는 비판이 거세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봤다.

박 전 본부장의 지시는 국수본 실무진을 거쳐 일선 수사팀에 전달됐다. 최 계장은 박 전 본부장의 지시를 이 계장에게 전달했고, 이 계장도 이에 공감해 두 사건을 분리 수사하기로 협의했다. 이후 최 계장은 광주청 강력계장에게 국수본의 ‘병합수사 금지 방침’을 전달했다.

광주청과 광산서는 이후에도 두 사건을 병합해 수사·송치하겠다는 의견을 거듭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최 계장과 이 계장이 사건을 분리할 경우 장윤기의 살인 범행 동기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병합수사를 저지할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했다.

특히 광주청 강력계장이 “수사 원칙상 병합 수사 및 병합 송치가 불가피하다”며 박 전 본부장에게 다시 보고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최 계장은 “박 전 본부장의 지침은 분리 수사 및 분리 송치”라는 취지로 이를 거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 계장은 병합수사를 주장한 광산서 수사팀을 ‘사건 욕심’이라고 치부하고, 광주청 강력계장에게 “광산서 내에서 합동수사를 하고 있다고 언론플레이를 하라”는 취지로 지시하기도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결국 광산서 수사팀은 스토킹·강간 사건과 살인 사건을 병합하지 못했고, 장윤기는 ‘단순 살인’ 혐의로만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스토킹·강간 사건은 살인 사건 송치 이후 검사의 송치 요청에 따라 별건으로 검찰에 넘어갔다.

검찰은 장윤기 사건과 관련해 광산서장을 비롯한 광산서 수사팀의 공무상비밀누설 및 증거인멸 등 혐의를 수사하던 중 국수본의 지시 정황을 포착했다. 이후 국수본과 광주청, 광산서 등을 압수수색하고 박 전 본부장 등 5명을 입건해 수사했다. 함께 입건된 당시 국수본 형사국장은 범행 관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했다.

검찰은 “경찰 조직의 과오 은폐, 여론 비난 및 질책 회피 등을 목적으로 수사지휘권을 행사해 정당하게 진행되던 수사를 가로막았다”며 “일선 수사에 대한 경찰 수사 최고 지휘부의 부당한 개입을 규명한 사례”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 전 본부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검찰의 처분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의 일부 부적절하고 부족했던 점에 대해서는 당연히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관련 수사 및 재판이 진행 중”이라면서도 “그러나 저를 비롯한 국가수사본부가 경찰 조직의 부실 대응을 은폐하고 여론의 비난을 회피하기 위해 분리수사를 지시해 필요한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게 했다는 식의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당한 논리구성은 결코 인정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고 했다.

아울러 박 전 본부장은 “왜곡, 축소 또는 부당한 지시를 할 필요도 아무런 이유도 없는 저로서는 위 사건에 대해 한 점 의혹이 없도록 기능별로 철저히 수사할 것, 사건의 성격상 보안을 유지할 것 등 지극히 정상적이고 통상적인 업무지시를 했을 뿐”이라며 “이에 대해 광주지검의 수사 과정에서 충분히 사안을 설명했음에도 무리하게 공소제기를 결정한 것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y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