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품 배터리를 사용하다 전동공구에서 불이난 결과물. 전동공구 업계는 외관을 거의 정품과 동일하게 만들었더라도 내부를 뜯어보면 조악하게 흉내만 내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가품 배터리는 충전중, 사용중 외에도 방치해뒀을 때도 자연 발화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전동공구 업계]
가품 배터리를 사용하다 전동공구에서 불이난 결과물. 전동공구 업계는 외관을 거의 정품과 동일하게 만들었더라도 내부를 뜯어보면 조악하게 흉내만 내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가품 배터리는 충전중, 사용중 외에도 방치해뒀을 때도 자연 발화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전동공구 업계]

서대문 공사현장 충전 중 폭발…업계 “가품 배터리 원인 추정”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2020~2024년 678건…인증·정품 사용 경고 잇따라

디월트·마끼다 단속 강화에도 재입점 반복… “플랫폼이 걸러내야” 주장도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작업자들이 휴식을 취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충전 중이던 배터리가 갑자기 폭발했습니다.”

지난해 서울 서대문구 한 주택 건설 현장에서 전동공구 배터리를 충전하던 중 불이 났다. 당시 현장 작업자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배터리에서 불이 시작됐고 화재가 주변으로 번지면서 약 3000만원 가량의 재산 피해도 발생했다. 업계가 사고 뒤 배터리를 확인한 결과 정품이 아닌 가품 배터리가 사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해 다른 대형 건설 현장에서도 전동공구 배터리가 터져 작업이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6일 전동공구업계가 ‘가품 배터리’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온라인에서 정품과 거의 같은 외관을 갖춘 위조 배터리가 유통되는 데다 유명 브랜드의 배터리 규격에 맞춰 제작한 저가 호환 제품까지 빠르게 늘어서다. 안전성 검증이 충분하지 않은 비정품 배터리를 사용할 경우 고장뿐 아니라 화재나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동공구 업계의 설명이다. 디월트 관계자는 “화재가 났다며 가져온 제품을 뜯어서 확인해보면 외관은 그대로 흉내를 냈으나 속은 가품인 경우가 상당수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화재는 사회 문제 수준이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소방청 통계를 토대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는 2020년 98건, 2021년 106건, 2022년 178건, 2023년 179건, 2024년 117건 등 5년간 678건 발생했다. 서울시는 배터리 화재 예방을 위해 KC 인증 여부를 확인하고 정품 배터리와 충전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전동공구는 배터리가 작업 중 반복적인 충격과 진동에 노출되는 사용 환경 탓에 화재 위험이 더 크다. 정품 배터리는 배터리 상태를 감지하고 과전류·과열·과전압 등을 제어하기 위한 회로를 제품과 충전기 사이에 연동해 사용한다. 반면 제품의 외형과 단자 규격만 맞춘 제품은 이런 통신·제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화재 위험이 높다는 것이 업계측 설명이다.

실제로 마끼다 국내 총판은 정품이 아닌 호환 배터리에 대해 “전원 공급만을 위한 배터리라며 내장 CPU가 없거나 과전류·과온도·과전압 제어 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가품이나 호환 배터리·충전기를 사용하다 발생한 고장은 공구 본체까지 품질보증 대상에서 제외한다. 마끼다 본사 역시 비정품 배터리 사용 시 배터리 파열과 화재, 인명·재산 피해 위험이 있다고 경고해 왔다.

디월트도 이미 수년 전부터 국내에서 가품 배터리 유통을 확인했다. 디월트코리아는 2021년 20V 5.0Ah 배터리 DCB184 모조품이 시중에 유통되는 것을 확인하고 정품과 가품을 구별하는 별도 안내까지 냈다. 당시 회사는 모조품 배터리를 사용할 경우 사용자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KC 인증 정보와 제조연월 표시 등을 확인하도록 했다.

디월트 측은 전동공구 가품 구별법을 회사 별도 페이지를 활용해 설명하고 있다. 최근의 가품들은 정품과 외관만을 봤을 땐 거의 구분이 어려운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디월트]
디월트 측은 전동공구 가품 구별법을 회사 별도 페이지를 활용해 설명하고 있다. 최근의 가품들은 정품과 외관만을 봤을 땐 거의 구분이 어려운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디월트]

문제는 가품의 외관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로고와 제품명은 물론 배터리 잔량 표시등과 각종 인증 표시까지 흉내 내는 경우가 있어 일반 소비자가 사진만 보고 정품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전동공구 본체 역시 유명 브랜드 제품 디자인과 상표를 베낀 제품이 온라인과 해외직구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업체들도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디월트와 스탠리를 유통하는 스탠리블랙앤데커는 가품 대응 담당자를 두고 ‘AI 기반 온라인 모니터링 시스템(마크 AI)’을 이용해 주요 오픈마켓과 쇼핑몰을 상시 감시하고 있다. ‘마크AI’는 온라인 가품·지식재산권 침해 탐지 및 차단 플랫폼으로, 사람이 쇼핑몰을 일일이 뒤지지 않아도 AI가 쿠팡·네이버·알리 등을 돌아다니며 가품으로 의심되는 판매글을 찾아내는 서비스다. 가품 의심 제품은 플랫폼에 신고하고 판매 페이지 삭제도 요청한다.

마끼다 역시 위조상품 모니터링 전문업체와 함께 주요 온라인 쇼핑몰과 오픈마켓을 살피고 가품으로 판단되는 판매 게시물에 대해 신고와 삭제 요청을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정·가품 구별법을 안내하고 정품 등록을 통해 유통경로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전동공구 업계 관계자는 “대형 공사현장의 경우 직원들이 나가서 작업 인부들이 가져온 전동공구의 가품-진품 여부를 모아서 확인한다. 가품인 사례를 확인하면 회사측에 알리고 교체 안내를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워낙 저렴한 가격 때문에 판매주체를 바꿔가며 유사 제품을 올리는 경우 이를 원천적으로 막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전동공구 업계는 반복적으로 가품이나 미인증 위해제품을 판매한 사업자의 정보를 플랫폼끼리 확인하거나 재입점을 제한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특히 배터리처럼 제품 결함이 화재와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품목은 상표권 침해와 일반 소비자 피해 문제만으로 접근해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는 겉모양이 똑같다고 같은 제품이 아니다. 내부 셀과 보호회로가 어떻게 구성됐는지는 소비자가 온라인 화면만 보고 확인하기 어렵다”며 “제조사가 하루 종일 가품을 찾아 신고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반복적으로 문제 제품을 올리는 판매자를 플랫폼 단계에서 걸러내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