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50%↑…전쟁 장기화에 비축유 고갈
에너지 충격 물가 확산…소비 위축 우려
“경제 안전판 약화…스태그플레이션 경로”
이란 전쟁의 충격에도 예상보다 견조하게 버텨온 세계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전쟁 초기에는 각국의 비축유 방출과 중국의 원유 수요 감소, 미국의 인공지능(AI) 투자 붐 등이 충격을 흡수했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이 같은 ‘안전판’이 약해지고 있어서다.
1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 등에 따르면 이란 전쟁 초기 우려했던 세계경제의 급격한 위축은 나타나지 않았다. 각국의 비축유 방출과 중국의 원유 수요 둔화가 국제유가의 추가 급등을 제한했고,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다변화된 공급망도 충격을 완화했다. 여기에 미국을 중심으로 AI 투자가 확대되면서 세계경제는 예상보다 견조한 흐름을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이 같은 완충 요인만으로 에너지 가격 상승을 막기 어려워지고 있다. 국제유가는 전쟁 이전보다 약 50% 상승해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고 있다. 충격은 원유에 그치지 않고 경유와 항공유, 천연가스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유럽의 가스 저장량도 예년 이맘때 기준 15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운송과 항공, 화학, 비료, 식품 등 경제 전반의 생산비용을 끌어올린다. 전쟁 초기의 일회성 유가 충격이 장기화할수록 기업들이 높아진 비용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면서 광범위한 인플레이션으로 번질 가능성도 커진다.
실제 미국과 유럽에서는 물가 압력이 다시 강해지고 있다. 문제는 고유가가 물가를 끌어올리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선택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6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연 3.75~4.00%로 결정했다. 2023년 7월 이후 3년2개월 만이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린다고 원유나 천연가스 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에너지 가격 상승이 상품과 서비스 가격, 임금과 기대인플레이션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긴축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경제가 치러야 할 비용은 커진다.
이미 글로벌 채권시장에서는 국채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기업과 가계의 차입비용을 끌어올리고 있다. 고유가→인플레이션→금리 인상→차입비용 상승→소비·투자 위축→성장 둔화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형성되는 셈이다.
로이터는 이날 분석기사에서 이 같은 상황을 ‘유가·금리·국채금리 상승이 빚어내는 스태그플레이션 칵테일’이라고 표현했다. 복합적인 요인이 섞여 시장에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하나의 강력한 칵테일을 빚어내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성장세가 상대적으로 약한 유럽의 부담이 크다. 독일 등은 높은 에너지 비용과 금리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 역시 달러 강세와 수입물가 상승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중동 산유국들도 생산시설과 수송 차질로 고유가의 수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금융시장으로 충격이 확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크리스 제프리 LGIM 거시전략 책임자는 “지금까지는 원자재와 금리의 문제였고 주식과 신용시장의 문제는 아니었다”며 “이제 그 영향이 주식과 신용시장으로 번지기 시작할 지점에 도달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의 AI 투자가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만큼 세계경제가 당장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보기는 이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향후 전쟁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이 소비와 투자 둔화로 이어지는지가 세계경제의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서지연 기자
sj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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