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옥자 노을공원 표지석 추진위원장 인터뷰

靑 경청수석 요청에 추진됐지만, 마포구 제동에 보류

“31년 기다렸는데 1~2년 더 기다릴 수 있다”

진옥자 씨의 첫째 딸 정창숙 씨.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참사’ 때 숨졌다. 진씨의 요청으로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진옥자 씨 제공]
진옥자 씨의 첫째 딸 정창숙 씨.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참사’ 때 숨졌다. 진씨의 요청으로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진옥자 씨 제공]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딸이 보고 싶을 때마다 올라갔어요. 거기 올라가서 기도하면 거기 있을 딸이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요.”

진옥자(75) 씨는 딸이 생각날 때마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 내 노을공원에 갔다. 1995년부터 찾았으니 햇수로 32년째다. 진씨는 딸이 묻혀 있음직한 자리를 찾아, 과일 한 점과 술 한 잔으로 재를 올리고 있다. 올해 7월 노을공원을 찾았을 때에는 같은 해 11월 노을공원에 조성되는 추모공 간에서 딸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마포구에서 추모 공간 조성에 반대 하면서 여의치 않은 상황이 됐다.

“31년도 기다렸는데, 1년, 2년을 못 기다릴까요. 더 기다릴 수 있습니.” 진씨가 20일 헤럴드경제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전했다.

진씨는 삼풍백화점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첫째 딸. 정창숙 씨는 1995년 6월 29일 오전 집을 나간 뒤, 사고를 당했다. 당시 정씨는 삼풍백화점 A동 지하 1층 아동복 매장에서 근했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 내 노을공원에 설치 예정이었던 삼풍백화점 참사 추모 조형 작품 조감도. [서울시 제공]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 내 노을공원에 설치 예정이었던 삼풍백화점 참사 추모 조형 작품 조감도. [서울시 제공]

진 씨는 그날 아침 딸과 마지막 만남을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딸이 버스 카드를 두고 갔나봐요. 출근한다고 집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어요. 신발도 벗지 않고 현관에서 버스 카드를 한참을 찾다가 나갔어요. 생각하니 마지막이라고, 엄마를 아침에 두 번 보고 간 것 같아요. 그때 이후로 딸 시신도 찾지 못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현장. [연합]
삼풍백화점 붕괴현장. [연합]

당시 참사로 502명이 숨졌다. 이 중 32명의 시신은 발견되지 못했다. 딸 정씨도 끝내 발견되지 못한 실종자 중 한 명이었다. 지하 1층 라커룸에서 벗어놓은 딸의 가방과, 아침에 입고 나간 옷이 딸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당시 참사 잔재가 묻혔던 난지도는 그 새 월드컵공원이 됐다. 난지도에서 딸의 흔적을 찾아 헤맸던 진씨는 결국 그곳을 매년 찾아 재를 올렸다. 이 모습을 본 재난피해자권리센터(이하 센터)가 나섰다. 센터와 청와대 경청소통수석비서관실·서울시 간 간담회를 통해 추모 공간 건립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센터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이 만든 비영리 재단 4·16 재단 산하 기관이다. 진씨는 노을공원 표지석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추모 공간 건립에 힘을 보탰다.

“매년 두세 번씩 딸이 있을 것 같은 (월드컵공원에) 올라갔는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재를 올리는 모습을 보고 (센터에서) 안타깝게 생각한 것 같아요. 센터가 청와대에 건의를 넣어줬어요. 추모 공간 조성이 문제 없이 진행되는가 했는데, 마지막에 브레이크가 걸렸네요. 30년 넘게 기다려왔어요. 더는 못 기다리겠습니까. 노을 공원에 꼭 아이를 기릴 수 있는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진씨의 어조는 담담했다. 하지만 길지 않은 대화 속에서도 꾹꾹 참아온 딸에 대한 그리움이 여전히 깊게 느껴졌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 내 노을공원 안에  조성 예정인 삼풍백화점 참사 추모 공간(붉은 원 안). [서울시 제공]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 내 노을공원 안에 조성 예정인 삼풍백화점 참사 추모 공간(붉은 원 안). [서울시 제공]

coo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