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형 의원 등 11인이 지난달 ‘한국형 베어허그’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새롭게 손을 본 조문은 세 개뿐이지만 평가는 엇갈렸다. 한쪽은 “시장 친화적인 저평가 해소 수단”이라 하고, 다른 쪽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우려했다. 논란은 법안이 이사회의 오랜 침묵을 겨냥한 데서 비롯됐다.
베어허그는 인수 희망자가 주가보다 현저히 높은 가격을 공개 제시해 이사회의 거절을 어렵게 만드는 전략이다. 그동안 회사의 답은 “확정된 바 없다”는 내용에 불과했다. 개정안은 주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수제안을 받으면 이사회가 접수 내용과 검토 계획·판단 결과를 공시하고 공개매수에 대한 의견을 의무적으로 밝히도록 했다. 주요사항보고서 제출 사유에도 ‘주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추가됐다.
배경에는 숫자가 있다. 지난해 연말 기준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의 약 69%가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에서 거래된다. 미국은 20%, 일본은 36%다. 누군가 한국 기업에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인수를 시도해도 일반주주는 알지 못했다. 경영진과 지배주주는 조용히 거절하고 넘어갈 수 있다. 지난해 7월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로 확대됐지만, 정작 회사에 ‘값’이 매겨질 때는 이를 확인할 창구가 없었다.
우려에도 근거는 있다. 제안 단계에는 자금 증빙이 필요 없어 ‘떠보기 제안’으로 주가가 출렁일 수 있다. 실효성도 의문이다. 대기업과의 거래 관계에 의존해 온 국내 사모펀드가 공개적인 적대적 인수에 나설 유인이 크지 않아, 결국 외국계 펀드에 기회만 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비판이 만나는 지점은 시행령이다. ‘중대한 영향’의 기준이 대통령령에 통째로 위임됐다. 기준이 느슨하면 허위 제안이 시장을 흔들고, 엄격하면 제도는 쓰이지 않는다. 법안의 성패는 여기서 갈린다. 미국에서 대상회사는 공개매수 개시 후 10영업일 안에 수락 권고, 거절 권고, 중립, 입장 표명 불가 중 하나를 이유와 함께 공시해야 한다. 다만 공개매수 개시 후에만 적용되며 단순한 인수제안은 제외된다.
일본은 2023년 8월 경제산업성의 ‘기업매수에 관한 행동지침’으로 이사회의 검토·설명 원칙을 세웠다. 대표 사례가 세븐앤아이홀딩스다. 캐나다 쿠슈타르는 주당 14.86달러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18.19달러로 약 22% 올려 다시 제안했다.
세븐앤아이는 회사 가치를 과소평가한 제안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절이 끝은 아니다. 세븐앤아이는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하고 슈퍼마켓 사업을 매각했으며 2조엔 규모의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거절의 대가는 주주들에게 값을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 되었다.
한국 이사회가 준비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개정안이 통과돼도 이사회가 제안을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 다만 거절에는 근거가 필요하고, 근거는 절차에서 나온다. 인수제안을 지체 없이 이사회에 보고할 체계, 공시 대상 여부를 가리는 내부 기준, 이해상충 시 독립이사 중심 특별위원회를 꾸리고 외부 재무·법률 자문을 받을 절차를 갖춰야 한다.
검토 과정은 문서로 남겨야 한다. 주가가 장기간 순자산가치를 밑도는 회사라면 밸류업 계획과 자본배분 정책부터 다시 점검할 일이다. 기업가치 제고가 곧 경영권 방어 수단이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사회가 거절할 권리는 여전히 남는다. 사라지는 것은 침묵할 권리다. 누군가 회사에 값을 매기는 순간 “확정된 바 없다”는 한 줄은 더 이상 답이 되지 못한다. 이사회가 준비해야 할 답은 하나다. 우리 회사의 값은 얼마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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